“골든타임 놓쳐 희생 커져”…자신은 배에서 뛰어내려 생존
“고박 안 한 것 분명”…해경은 고박 부실 등 침몰 원인 조사
서산 고파도 선박 전복 사고 현장. (태안해경 제공)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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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할 때보다 기울어진 느낌 들어…다급한 방송 소리·외국인 선원은 이리저리 분주”
(서산=뉴스1) 이찬선 기자 = "고파도를 지나던 시점 같은데, 출항할 때보다 많이 기울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세월호 사고를 본 뒤 여차하면 뛰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도에서 전복된 서해호 살아남은 A 씨(53·남)는 4일 뉴스1과 통화에서 "생존은 극적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중장비 운반선인 83톤급 서해호는 지난달 30일 오후 6시 26분께 24톤 덤프트럭 1대와 11톤 카고 크레인 1대를 싣고 서산 우도항을 출발해 15㎞가량 떨어진 서산 구도항으로 향하던 중 팔봉면 고파도리 인근 해상에서 전복됐다. 이 사고로 탑승객 2명이 구조됐으나 나머지 5명은 실종됐다.
A 씨는 "출항 후 고파도에 다가서는 시점까지, 그사이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고파도를 지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며 "무슨 얘기인지는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방송으로 소리치는 소리가 나오면서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잠시 후 선원 외국인 선원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며 "고파도 지나는 동안 체감상으론 5∼10분 정도 만에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선박의 선상에 실은 카고 크레인에 탑승해 있었는데, 출항 이후 줄곳 배 상황을 주시했다고 한다.
A 씨는 "처음엔 주시를 안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배가 기울어져 문제가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출항할 때 보다 많이 기울어진 상황을 느꼈다"고 했다.
"세월호 생각하며 여차하면 뛰어내리자"…배 기울자 뛰어내린 뒤 선수에 다시 올라 탑승객 구조
그에게 배가 기울어진 느낌이 들자 12년 전 세월호 사고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A 씨는 "세월호 사고를 본 뒤 차라리 바다에 뛰어내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일단 크레인에서 내려 대기하다가 여차하면 뛰어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전복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A 씨는 배가 심해가 기울어지고 파도가 유입됐다. 그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난 배수관이 역류하는 것을 보자 자칫 배가 전복돼 빨려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충남 태안이 고향인 그는 수영할 줄 알았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수 미터 앞에 전복되고 있는 배의 선수에 올라탔다. 그리곤 119에 신고하려던 중 탑승객 1명이 배에 매달려 있는 것을 목격하고 손을 내밀어 끌어 올렸다. 이어 차가운 물에 젖은 손을 비벼가며 핸드폰에 119 버튼을 가까스로 눌러 신고했다. 40분 후, 주변에서 먼저 도착한 어선의 도움으로 이들 2명이 구조됐다.
그는 배가 기울기 시작한 고파도 부근이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파도는 대우도항에서 남쪽으로 2㎞가량 떨어져 있다.
A 씨는 "만일에 선장이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5∼10분 사이에 선원과 탑승객들에게 전복에 대비해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라고 했다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서해호 전복 사고로 실종된 선원을 수색 중인 해경 함정. (태안해경 제공)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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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 고박 않고 운항"…12년 전 세월호 사고 판막이
A 씨는 서해호가 고박을 하지 않았다고 밝혀 전복 사고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년 전 세월호 사고와 판박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는 통화에서 "서해호 전복은 선체에 실은 덤프트럭과 크레인을 고박하지 않은 채 운항해 사고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A 씨는 "고파도에서 전복된 서해호가 화물을 선체에 고정(고박)하지 않은 채 운항했다"며 "출항 때부터 선체가 좀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고, 고파도 근처를 지날 때 갑자기 배가 뒤집어졌다"고 했다.
그는 "배에 실은 차량은 트럭과 크레인뿐이었고, 두 대 모두 출항 때부터 고박 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탑승객 누구도 고박 이야기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차량 등을 싣는 차도선인 서해호는 중장비를 4대까지 싣고 운항하던 중급 선박이다.
화물을 선체와 고정하지 않고 운항하는 것은 불법이다. 국제해사기구(IMO) 지침과 한국 선박안전법에서는 화물 해상 운송 시 견고한 고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객선 세월호는 컨테이너 고박 부실과 과적으로 복원력을 잃고 침몰에 이른 원인이 됐다.
해경은 A 씨 등의 진술을 근거로 폐쇄회로(CC)TV와 차량블랙박스 등을 확보해 고박 지침 등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또 산박을 인양해 고박 설치 유무 등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chansun2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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