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 해군이 필리핀 마닐라만으로 함포 사격을 퍼부을 때였습니다. 한 해병대 병사가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물에 떨어뜨린 윗도리를 손에 쥔 채 구조돼 군법회의에 회부됐습니다.
조지 듀이 제독이 "왜 그랬느냐"고 물었습니다. 병사는 건져 낸 옷에서 사진을 꺼내 보였습니다. 탈영 죄를 무릅쓰고 목숨까지 건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듀이 제독은 악수를 하며 석방했습니다.
'그리운 조선,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여기 로씨야 땅에서 생일을 맞는 가장 친근한 전우 동지에게…'
지난주 우크라이나군이 사살한 북한군 품에서 일기 수첩이 나왔습니다. 정경홍이라는 병사가 '전우 동지에게 전하는 생일 축하' 글이었지요. 그건, 이역만리 남의 전선에 탄알받이로 팔려 온 자신의 그리움이기도 할 겁니다.
전쟁 통도 아닌데 어머니와 아들의 운명이 하늘과 땅으로 갈렸습니다.
"착륙을 못하는 중, 유언해야 하나."
"어쩐대… 왜 전화가 안 돼?"
소식 없는 중년의 '작은 왕자님'에게 어머니가 문자를 띄웠습니다.
"하늘 위에 있어? 땅에 있어?"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 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 놓는 이 폭풍, 이 바람은 무엇인가…'
질풍노도의 한 해가 지는 날, 현직 대통령에게 사상 첫 체포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국민과 역사를 거스른 지도자에 대한 수사가 첫발을 뗐습니다. 그렇듯 올 해넘이는 한 매듭을 짓는 마감이 아닙니다.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며 가는 고갯마루입니다. 전쟁 통 시인의 할머니처럼…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이제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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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듀이 제독이 "왜 그랬느냐"고 물었습니다. 병사는 건져 낸 옷에서 사진을 꺼내 보였습니다. 탈영 죄를 무릅쓰고 목숨까지 건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듀이 제독은 악수를 하며 석방했습니다.
'그리운 조선,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여기 로씨야 땅에서 생일을 맞는 가장 친근한 전우 동지에게…'
지난주 우크라이나군이 사살한 북한군 품에서 일기 수첩이 나왔습니다. 정경홍이라는 병사가 '전우 동지에게 전하는 생일 축하' 글이었지요. 그건, 이역만리 남의 전선에 탄알받이로 팔려 온 자신의 그리움이기도 할 겁니다.
전쟁 통도 아닌데 어머니와 아들의 운명이 하늘과 땅으로 갈렸습니다.
"착륙을 못하는 중, 유언해야 하나."
그 마지막 문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대학생 아들은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농담 잘하는 우리 엄마, 또 실없는 말씀 하시네.' 이상해서 다시 보낸 문자, 답이 영원히 끊겼습니다.
"어쩐대… 왜 전화가 안 돼?"
소식 없는 중년의 '작은 왕자님'에게 어머니가 문자를 띄웠습니다.
"하늘 위에 있어? 땅에 있어?"
아들은 이미 지상의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잔인한 세밑이 또 있을까요.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 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 놓는 이 폭풍, 이 바람은 무엇인가…'
질풍노도의 한 해가 지는 날, 현직 대통령에게 사상 첫 체포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국민과 역사를 거스른 지도자에 대한 수사가 첫발을 뗐습니다. 그렇듯 올 해넘이는 한 매듭을 짓는 마감이 아닙니다.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며 가는 고갯마루입니다. 전쟁 통 시인의 할머니처럼…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이제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12월 31일 앵커칼럼 오늘 '꽃씨 품고 넘는 해'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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