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하면 흔하게 떠오르는 3가지 코드가 있다. 회귀, 빙의, 환생, 줄여서 회빙환이다. 이제는 웹소설에서 거의 공식으로 읽힐 만큼 유행이 된 소재들이다. 이 소재를 접했을 때 독자들은 주인공의 빠른 성장과 성취를 기대한다. 「연애지상주의구역」은 다르다. 회귀와 빙의라는 일종의 치트키가 '빠른 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웹소설 대표 키워드인 회귀·빙의·환생이 항상 주인공의 빠른 성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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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의 「연애지상주의구역(이하 연지구)」는 현실 속 '선배'와 주인공 '태명하'의 대화로 시작한다. 매번 명하에게 소설을 보여줬던 선배는 그 소설을 게임으로 만들겠다며 명하에게 소설과 게임의 차이를 질문한다. 명하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바꿔나갈 수 있지만 이미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소설은 독자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고 답한다.
선배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명하의 입에서 나온 소설 속 인물인 '차여운'에 집중한다. 명하는 유독 '차여운'에 마음을 썼고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으며 자신이 작가라면 차여운의 이야기를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선배는 명하에게 미션을 내린다. 차여운을 행복하게 만들라는 미션이다.
그 후 정신을 잃은 명하는 선배의 소설 속 엑스트라로 빙의한다. 현실이 아닌 새로운 세계. 하지만 완전히 소설은 아니다. 선배가 준비하던 대로 소설이 아닌 게임의 모습을 띤 세계다. 그리고 그 게임은 '플레이어가 바꿔나갈 수 있는', 명하가 바꿔 나갈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연지구」가 게임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보니 독자는 '상태창'을 계속해서 마주한다. 해결해야 할 미션과 해결하면 받는 베네핏, 실패할 때 받는 페널티 등 게임의 흔적이 독자를 계속 따라온다.
능력치로 적을 소탕하고 레벨업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 간 호감도 상승처럼 심리적인 능력이 더 중요하기에 게임의 세계는 감정의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챈다. 그 변화로 불안정해진 게임 서버는 엑스트라인 명하가 사람들에게 '인식'되거나 여운의 이야기 전개를 새롭게 바꿀 때마다 버그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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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디버프였던 버그는 후반부로 갈수록 상태 창의 문장이 끊기거나 외계어처럼 변하는 표현으로 독자에게 보인다. 엑스트라로 존재하는 명하는 게임 속 주인공 사이에서 지워지기도 하며 최종적으로 다른 시간에 갇히기도 한다.
만약 이야기의 배경이 게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갑작스럽게 바뀌는 배경은 어색해지고 장면과 장면의 짜깁기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이기에 다른 시공간으로 갑자기 넘어가도 어색하지 않다는 게 「연지구」 후반부의 개연성을 만들어 준다. 게임은 앞서 말한 대로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는' 이야기라서다.
억지로 바꾼 세계의 변화에도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게임이기에 독자의 허용 범위도 넓어진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미션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 미션에 '선배'가 계속 개입한다.
선배는 소설 초반(명하와의 대화), 상태 창 메시지(조력자의 역할ㆍ명하의 휴대전화로 오는 문자), 중간중간 끊기는 기억(명하의 현실), 그리고 소설의 가장 후반부(명하가 세계에서 지워진 때) 등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묘하게 기억나지 않는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에서는 명하와 여운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선배의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하나의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명하와 여운을 연결하고 그 세계를 만든 선배의 존재는 결국 '신'이자 '작가'로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비정상적 시스템 안으로 명하를 밀어 넣은 건 '신'이 현실에서 죽으려 했던 스물아홉 태명하를 불쌍히 여겨서였을까. 소설 속 선배는 너무 쉽게 등장하고 사라지기에 독자들은 의문을 느낀다. 차라리 작가가 선배를 '신'으로 정의했다면 어땠을까.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졌을까.
결론적으로 태명하는 차여운의 인생을 바꾼다. 여운의 인생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명하의 인생 역시 바뀐다. 그렇기에 「연지구」는 '차여운'만 행복하게 만드는 빙의물이 아니다. 스물아홉의 명하가 열아홉의 명하로 돌아가 그들의 삶에 개입할 때 명하는 자신의 과거와도 마주한다. 다녔던 학교, 그를 둘러싼 소문, 더 이상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할머니 등 명하가 잊었던 과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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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거는 태명하가 삶을 갈망하게 만든다. 여운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지만 본인의 삶 역시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친구를 만나고 대학에 가고 사랑을 배운다. 그래서 「연지구」는 새로운 세상 속으로 '빙의'하는 동시에 과거 나 자신으로 '회귀'하는 특징을 모두 가진다. 차여운의 행복을 위해 빙의한 태명하는 희생을 통해 그 목표를 이루고 결과적으로는 회귀한 자신의 행복까지 차지한다.
행복은 다양하기에 하나의 의미로 정의할 수 없다. 꿈과 친구, 연인과 자기애 등 「연지구」에는 다양한 행복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미지처럼 보이는 뛰어난 색감 묘사나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포착하는 문장은 「연지구」 속 인물 관계를 견고하게 만든다.
김고운 광주대 웹소설창작연구소 연구원
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mc26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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