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3 (금)

25년 전 '사람 닮은 로봇' 내놨던 한국…"미중에 추월 당한 이유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터뷰]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익재 AI·로봇연구소장…
美·中 빅테크 사이에 낀 'K-휴머노이드', 새로운 사업모델 강조

머니투데이

(왼쪽부터)옵티머스, 아틀라스, 피규어01/사진 유튜브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가 왔다"

국내외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이 최근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말이다. 지난 7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옵티머스'를 내년부터 공장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챗GPT를 로봇에 심고자 하는 오픈AI의 전폭적 지원을 받던 미국 로봇 전문기업 피규어AI도 최근 커피 만드는 로봇으로 화제를 모았던 '피규어 01'를 BMW 공장에 투입했다. 자동차를 직접 조립하는 모습을 연출해 다양한 활용 가능성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대차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지난달 30일 '올 뉴 아틀라스'가 공장에서 인간보다 더 빠르고 능숙하게 일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처음 공개해 이목을 이끌었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AI·로봇연구소장은 "머스크가 옵티머스를 몇 년 내 2만달러(약 2800만원)에 팔겠다고 선언하면서 머잖아 '1가구1로봇' 시대가 곧 올 것이란 기대감을 만들었다"며 "챗GPT로 촉발된 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 저출산·고령화로 대표되는 사회구조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휴머노이드 대중화에 트리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휴머노이드 대중화는 스마트폰이 생겨 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던 것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9년 설립된 KIST AI·로봇연구소는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때 검체 채취 로봇을 제작하는 등 사회 곳곳에 필요한 로봇을 만들어온 국내 최대 규모 공공로봇연구소다. 지금까지 △고령자 재활 및 일상 보조용 웨어러블(착용형) 보행 보조 로봇 △AI 홈서비스 로봇 집사 △한국형 달탐사로버 △정밀수술 로봇 등을 개발해왔다.

머니투데이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AI·로봇연구소장/사진=KIS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휴머노이드는 공장 내 협동로봇이나 배달·서비스용 로봇과 달리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어 그 활용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김익재 AI·로봇연구소장은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된 제조나 서비스 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도구로 휴머노이드는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AI가 고도화하면서 이와 결합한 로봇이 노동자 및 숙련공 부족, 노인 돌봄 등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재 소장은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첫 휴머노이드는 신화 속 반인반마와 닮은 형상으로 1999년 개발된 '센토'(Centaur)다. 비록 4족 보행 로봇이지만 꽃병에 꽃을 꼽고 사람과 같이 톱을 잡고 톱질도 하며 간단한 인사말도 건넬줄 알았다. 카이스트(KAIST)에서 개발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휴보'는 2015년 전세계 내로라하는 로봇연구팀들이 참가하는 DRC(DARPA 로보틱스챌린지)에서 우승기를 거머쥘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 후 우리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미국과 중국의 휴머노이드가 엄청난 발전을 이뤘고 현재 관련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아시모' 등을 만든 전통적인 로봇 강국 일본과 독일도 휴머노이드에 있어서는 이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소장은 "전력질주를 하거나 넘어지려는 순간에 중심을 잡는 건 액추에이터(구동기)가 강한 힘으로 빠르게 움직여 버티는 건데 이런 핵심부품들을 대부분 중국회사에서 만든다"며 "중국에선 특별한 규제가 없는 데다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민간에선 최근 챗GPT와 같은 AI와의 결합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어 갈수록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했다.

머니투데이

로봇 복합인지기술을 설명하고 있는 김익재 소장/사진=KIS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와 로봇기술의 결합은 단순 반복작업을 넘어 언어의 이해, 사회적 상호작용 등 고차원적인 능력을 갖는 로봇의 등장을 예고한다. 로봇들이 복잡한 실제 상황에 적응하고 작동할 수 있도록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의 강화학습 등이 이미 개발·보급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 응대, 가사 도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과 유사한 상호작용을 제공할 것이란 예상이다.

김 소장은 "AI를 탑재한 로봇은 인간 행동을 따라하는 모방학습을 통해 지시한 명령을 알아서 추론하고 다양한 작업으로 수행한다"며 "이를테면 '책상에 물 흘렸는 데 도와줘'라고 얘기하면 닦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이를 가지고 와서 해당 부분을 닦는 일련의 연속 동작을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생성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AI로봇의 모방학습의 예시/자료=KIS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 로봇산업계를 긴장하게 만든다. 최근 '휴보 아버지'로 불리는 오준호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설립한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이동형 양팔 로봇을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도요타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 외엔 이 분야에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이 얼마 안되는데다 이렇다 할 성과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해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 지원은 물론 로봇기업이 커 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딥테크 경쟁력과 막대한 자금력으로 밀어 부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가 기회를 엿보려면 현 시점에서 필요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사업모델로는 △로봇 학습용 데이터 서비스 △언어모델과 로봇행동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 △영상시청 기반 인간행동 모방시스템 등을 예로 들었다.

아울러 김 소장은 우리나라의 높은 제조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고도화된 센서, 경량화된 외골격 등의 로봇 핵심부품 양산과 오랜 시간 작동하는 배터리 등 에너지 효율화를 이뤄낼 수 있는 전력생산·저장기술을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휴머노이드 관련 신규 사업모델을 키우려면 우선적으로 해결할 일이 있다. 바로 개인정보보호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김 소장은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미국 등 선진국에 추월을 당했던 이유는 너무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데이터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인간 행위를 모방해 학습하는 로봇 역시 이런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샌드박스 등 기존 제도를 더 넓게 적용하며 기술 발전과 규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류준영 기자 joon@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