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29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이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본부를 방문해 건설이 중단된 상태였던 신한울원전 3, 4호기 부지를 둘러본 뒤 발언하고 있는 모습. 울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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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극우 포퓰리즘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주된 동력으로 삼는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레트로토피아’(retrotopia)라는 말로 표현했다. 근대의 초입이던 20세기 초반, 사람들은 안전과 복지를 제공해줄 확고한 민족국가를 유토피아로 여겼고 이를 실질적인 ‘토포스’(장소)로 구현하는 데 매달렸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곧 족쇄를 풀고 지구화·개인화·사유화로 치닫는 길을 열었고, 근대의 막바지엔 국가 체계를 벗어난, 말 그대로 ‘토포스 없는 유토피아’가 대두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극우 포퓰리즘이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개인들에게, 공동체가 안전과 복지를 책임지던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약속으로 정치적 지지를 얻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등 여러 극우 포퓰리즘 운동들의 공통점이다. 물론 여기서 ‘좋았던 시절’은 실제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목적에 맞춰 상상된 것에 불과하다.
원전(핵발전소)은 안보(핵무기)와 직결되며, 국가와 기술관료의 중앙집권적·수직적 통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애초 우파와 가까운 에너지원이다. 여기에 기후정치에 대한 혐오, ‘외부 세력’에 대한 적대 등 새로운 양념들을 잘 버무려 넣으면 극우 포퓰리즘이 휘두르기 좋은 무기가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스웨덴이다. 1980년대부터 일찌감치 점진적·단계적인 ‘탈원전’ 정책을 이어오던 스웨덴은 2022년 우파 연립정부의 집권 이후 이를 폐기했다. 스웨덴민주당이 주도한 이 과정은 극우 포퓰리즘이 원전을 앞세워 과거에 대한 향수를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신나치주의(인종주의)에서 탄생한 스웨덴민주당은 애초 우파에서도 배척을 당하던 처지였다. 그러나 ‘반이민’ 정서의 확대로 점차 기반을 다졌고, 2021년 좌파 블록을 깨기 위해 우파 정당들이 맺은 ‘티되 협정’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이때 스웨덴민주당이 들고 온 것이 바로 원전이다. 기후변화를 부정해온 극우파조차 이제 기후정책을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원전은 기후정책을 그들이 주도하는 의제로 탈바꿈시켜줄 엔진이었다. 이 엔진은 ‘원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동력으로 삼아 돌아간다.
여기에 스웨덴민주당은 과거를 미화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고, 이를 다시 미래로 투영하는 회로를 덧붙였다. ‘스웨덴이 기술강국·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원전을 사용했기 때문인데, 좌파는 이를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스웨덴을 망쳤다’는 서사다. 원전은 스웨덴의 ‘좋았던 시절’을 만든 원천으로, 재생에너지는 외국의 간섭이나 이민자의 침입 같은 것으로 상상됐다. 이렇게 왜곡된 방식으로 ‘국뽕’과 원전이 한 몸이 된 스웨덴의 ‘원전 만능주의’는 2022년 총선에서 우파 블록이 승리하는 데 일조했고, “2045년 100%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기존 정책에서 ‘재생에너지’를 ‘화석연료 없는(fossil free) 에너지’로 바꿔버렸다. ‘앞으로 20년 동안 신규 원전 10기를 짓는다’는 비현실적인 계획이 스웨덴의 에너지·기후정책, 더 나아가 ‘모든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 원전 산업,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미래 성장동력은 고사될 것이고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할 것입니다.”(12월12일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
스웨덴민주당의 사례는, 내란 사태를 일으킨 우리나라 대통령이 기댄 극우 포퓰리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실을 무시한 채 에너지 수급부터 산업 성장, 국가 안보, 기후·환경 정책 등 모든 문제들을 원전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허황한 ‘원전 만능주의’는 정치적 목적, 곧 지난 정부에 대한 반동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인 대통령의 무참한 시도는, 이것이 ‘부정선거’ 음모론만큼이나 극우 포퓰리즘 세계관의 중핵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윤석열과 함께 단죄해야 할 것들’의 명단에서 우리가 ‘원전 만능주의’를 결코 빼놓아선 안 되는 이유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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