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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여동생 꿈에 먼저 돌아온 참전영웅…오두용 하사 73년 만에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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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철원서 유해 발굴된 이후 40여일 만에 신원확인

뉴스1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엄수된 6·25 전사자 합동봉안식에서 장병들이 영현 봉송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12.1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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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다 약관(弱冠)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이 유해가 발굴된 지 불과 40여일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10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적근산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2사단 소속 고(故) 오두용 하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45명으로 늘어났다.

국유단은 전사연구를 토대로 국군이 중공군과 전투를 벌인 지역에서 발굴에 나서 유해 1구를 찾았고, 오 하사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가 경상남도 고성군으로 표기된 것을 확인한 후 제적등본과 비교해 고인의 막내 여동생 오점순 씨와 친·외조카 두 명을 찾았다. 이어 이들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분석해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오점순 씨는 국유단으로부터 신원확인 가능성에 대한 연락을 받기 전날 밤 꿈에서 어린 시절 고향 집에 들어오는 오빠를 마주했다고 한다.

오점순 씨는 "오빠 생각에 한없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유 없는 눈물과 통곡이 절로 나오더라. 자기 유해가 돌아왔다고 꿈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라며 "국방부에 감사드리며, 오빠를 국립묘지에 묻어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유단은 "발굴 40일 만에 유해 감식부터 유가족 시료채취 및 유전자 분석까지 완료해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했다"라며 "이 같은 신속한 신원확인은 국유단이 유해발굴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에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 하사의 넙다리뼈가 발견된 지점에서 함께 발굴된 인식표가 신원확인 속도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인식표가 동반 출토돼 신원확인된 호국영웅은 42명으로, 전체 신원확인 전사자의 17%밖에 되지 않는다.

오 하사는 1931년 5월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작은 형과 함께 1950년 11월에 20세의 나이로 부산 제2훈련소에 입대했다.

오 하사는 국군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된 후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 '청계산-백운산 진격전',을 거쳐 '734고지 전투'에 참전해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1951년 8월 3일 전사했다.

고인과 함께 입대한 작은형 고(故) 오재용 씨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채 귀향한 후 상이군인으로 지내다 33세의 이른 나이로 작고했다.

오 하사에 대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이날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호국영웅 귀환 패·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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