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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조류 충돌 경고 2분 만에 "메이데이"... 비상 착륙 후 산산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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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명 탄 여객기... 승무원 2명 빼고 사망한 듯
'조류 충돌'에 두 차례 활주로 착륙 시도했지만
새 충돌 여파로 랜딩기어, 유압 시스템 등 고장
랜딩기어 없이 동체 착륙... 외벽 충돌 산산조각
한국일보

29일 181명이 탑승한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 항공기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랜딩기어 고장으로 착륙 도중 공항 외벽과 충돌해 폭발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추락한 여객기의 모습. 무안=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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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하늘에) 있어.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 하는 중."

가족에게 다급히 문자를 보낸 A씨를 비롯해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조금 늦게 도착하는 줄 알았던 제주항공 2216편 여객기 승객 181명 가운데 대부분이 영원히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착륙을 위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진입 중 '조류 충돌 주의 경보'를 들은 조종사는 2분 뒤 "메이데이(조난신호, May day)"를 외쳤다. 이후 새 떼와 부딪힌 여객기는 비상착륙을 시도했지만 공항 외벽과 충돌해 산산조각이 났다. 사망자는 179명이고, 승무원 2명만 생존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국일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 추락한 여객기 탑승자가 가족에게 보낸 카카오톡 내용.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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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경보 이후 2분 만에 조난신호


29일 중앙사고수습본부와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항공 2216편 여객기는 오전 1시 30분(현지시간)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을 출발해 오전 9시 무안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었으나 기상 상황으로 지연돼 9시 11분 착륙할 계획이었다. 이 비행기엔 한국인 승객 173명과 태국인 2명, 승무원 6명 등 총 181명이 타고 있었다.

오전 8시 54분, 고도를 낮추고 공항에 접근하며 1번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는 8시 57분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충돌 주의 경보'를 받았다. 그리고 불과 2분 뒤, 여객기 조종사는 "메이데이"를 외쳤다. 지상 200m 상공에서 새 떼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 것이다. 버드 스트라이크 이후 비행기 우측 엔진에서 화염이 발생했다. 공항 주변에서 이를 목격한 김모씨는 "'쾅' '쾅' 하는 굉음이 들렸고 비행기 후미에서 불꽃이 보였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그래픽=이지원 기자


한국일보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승객과 승무원 181명이 탑승한 여객기가 추락해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여객기 탑승 181명 중 구조자 2명을 제외한 인원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뉴스1(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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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착륙 실패...랜딩 기어 없이 비상 동체 착륙 시도


여객기 조종사는 정상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올려 공항 상공을 선회하며 관제탑과 교신했다. 무안공항 관제탑은 여객기에 "2차 랜딩(착륙) 시도를 하라"고 했다. 이에 여객기는 다시 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공항 활주로 반대(19번 활주로) 방향으로 접근했다. 그사이 우측 엔진에서 발생한 화염이 기체 내부로 번져 유독 가스 등이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자, 여객기 기장은 활주로 끝으로 이동해 2차 랜딩을 할 여유가 없다고 보고 곧바로 동체착륙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착륙을 위해선 자동차의 바퀴 역할을 하는 랜딩기어가 내려와야 하는데, 바퀴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 3분 여객기는 결국 무안공항 활주로 중간 지점에 랜딩기어 없이 그대로 내려앉았고, 동체 바닥이 닿은 채 활주로를 약 10초간 직진했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여객기 동체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수백 미터를 끌려간 뒤 활주로 끝 항해안전시설(콘크리트로 구성된 안테나)을 치고 담벼락을 무너뜨린 뒤에야 멈춰 섰다.
한국일보

29일 181명이 탑승한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 항공기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랜딩기어 고장으로 착륙 도중 공항 외벽과 충돌해 폭발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당국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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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직후 비행기 동체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여객기는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고, 꼬리 부분만 흙검정색으로 그을린 채 일부 남았다. 추락 충격으로 공항 활주로 밖에 있는 회색 외벽은 5~10m가량이 무너져 버렸고, 인근에는 여객기 파편과 여객기 의자가 뽑힌 채 나뒹굴었다. 사고 당시 충격을 보여주듯 여객기 의자는 등받이나 엉덩이 부분만 남아있는 등 온전한 모습이 거의 없었다. 사고 현장에서 150m 떨어진 도로까지 기내 조명과 시신 일부 등이 있었다.

여객기 교신 내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충분한 활주로 길이에도 불구하고 기체 내부로 연기와 유독 가스가 들어오면서 연료 배출과 같은 비상 조치를 취할 새도 없이 비상착륙에 나섰던 것 같다"며 "엔진 계통이 악화돼 전자 및 유압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랜딩기어도 내려오지 않은 채 착륙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무안공항 측은 "사전에 랜딩기어가 고장 난 걸 알았다면 연료도 다 버리게 하고 활주로 바닥에 마찰계수와 화염을 냉각시켜 줄 물질을 깔았을 텐데 한시가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길이가 2,800m로 짧아 문제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국토교통부는 "활주로 길이에 의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처참한 현장... 150m 밖으로 날아간 여객기 의자

한국일보

29일 181명이 탑승한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 항공기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랜딩기어 고장으로 착륙 도중 공항 외벽과 충돌해 폭발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과학수사단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무안=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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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당국과 경찰은 사고 직후인 이날 오전 9시 14분 현장에 도착해 2분 뒤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여객기 잔해에서 수색작업에 돌입했다. 9시 23분 남성 승무원 1명이 구조됐고, 9시 48분 여성 승무원 1명이 추가 구조됐다. 이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덜 부서진 여객기 꼬리 쪽에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승무원은 구조 뒤 병원으로 이송돼 "내가 여기 왜 오게 된 것이냐" "기억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분 뒤 여객기 동체 후미 쪽에서 사망자 28명이 발견됐으며, 불은 사고 43분 만에 초기 진화됐다. 전남소방본부는 긴급구조통제단을 가동, 경찰과 군부대 등 700여 명을 동원해 진화 및 시신 수습에 나섰다. 이정현 무안소방서장은 "비행기 동체가 심하게 파손됐고 (시신들이 사고 당시 충격으로 튀어 나가) 동체 안에 있다고 하기 어렵고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 투입된 군 병력과 소방대원, 과학수사대원 등 100여 명은 공항 담장 외부로 300m가량 펼쳐진 갈대밭에서 일렬로 선 채 수색작업을 펼쳤다.

실종자 수색 작업은 밤새 이어질 계획이다. 이날 참사 현장에는 소방 490명, 경찰 455명, 군 340명, 해경과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 총 1,572명이 사고 수습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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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동준 기자


사고 소식을 듣고 무안공항으로 몰려온 유족들은 "생존자, 희생자, 실종자 등 누가 신원 확인이 됐는지 화면에 띄워 달라"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당국은 처참한 현장 상황 탓에 "신분증과 지문 DNA(유전자) 등으로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다"는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사망자 22명의 지문감식이 완료돼 명단이 공개되자, 이를 확인한 유족들 입에서는 비명과 함께 "안 돼, 내 딸" "너가 왜 거기에 있느냐"는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신원 확인이 늦어지면서 무안국제공항은 유족들의 애통한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제주항공 2216편에는 태국 방콕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고 돌아온 가족 단위 승객과 광주·전남 지역 주민이 많았다. 승객 175명의 명단에는 10대 미만 어린이도 5명이나 됐고, △10대 9명 △20대 10명 △30대 16명 △40대 32명 △50대 42명 △60대 39명 △70대 22명이 있었다.

사고 원인 규명 시일 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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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2216편 추락 참사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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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사고 원인 조사에 나섰다. 주종완 항공정책실장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소속 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해 초동 조사를 하고 있다"며 "블랙박스 가운데 비행기록장치와 음성기록장치 등을 모두 수거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랜딩기어가 펴지지 않은 이유 등은 비행기록장치 분석을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국토부는 다만 엔진과 랜딩기어가 상호 연동돼 고장 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고 여객기를 운행한 기장은 비행시간 6,823시간, 부기장은 1,650시간을 보유한 베테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장은 2019년 3월부터, 부기장은 2023년 2월부터 직을 맡았다고 한다. 제주항공 측은 해당 여객기에는 사고 이력은 전혀 없었고, 정비 프로그램에 따라 정비해 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밝혔다.


무안=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무안=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무안=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무안=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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