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기소하면서 밝힌 그날의 진실은 경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 대통령은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계엄 해제 결의가 이뤄지자 “해제돼도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계속 진행하라”고 했다. 계엄 해제 직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3명부터 잡으라”고 지시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체포조가 휴대했던 송곳·포승줄·망치·케이블 타이·야구 방망이 사진도 공개됐는데, 무슨 테러리스트 진압 작전이 떠올랐다. 전두환 시절 국보위에 해당하는 별도의 비상 입법기구 설치 계획도 있었다. 한 평론가는 “치밀하기보다 어설픈 계엄이라 처음엔 코미디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장르가 호러로 바뀌었다. 무섭다”고 했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하는 상상조차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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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시계 늦추려는 대통령·여당
정치 셈법으로 밀어붙이기 야당
위기 수습보다 혼돈, 국민은 분노
보름 전 탄핵안이 가결될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망상에 사로잡힌 대통령의 반헌법적 행위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으며 유린당한 민주주의와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이 빠르게 회복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가 목도한 정치 상황은 기대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통령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 헌재 심판 서류 수령도 거부하면서 용산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여전히 술을 마시고 격노하면서 여당 친윤 의원들과 소통한다는 얘기가 나돈다. 지지자 결집용 SNS 여론전도 예고했다. 지난 27일 헌법재판소의 첫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의 적법성부터 다투겠다고 밝혔다. 법의 틈새를 파고들며 최대한 탄핵 시계를 늦추겠다는 속내다.
여당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계엄 해제와 탄핵안 가결을 이끈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내고 친윤 체제를 굳힌 후,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무장한 강성 지지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대통령 쉴드치기에 여념이 없다. 당의 극우화, 합리적 보수의 궤멸을 우려하는 목소리엔 귀를 닫았다. 윤상현 의원은 28일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큰절을 하며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했다. 한 인사가 그에게 “쓸 만한 인간들 5명 데리고 자유통일당으로 오세요”라며 껄껄 웃었다.
국민의힘은 심지어 검찰 공소장을 ‘픽션’이라고 주장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의 입장문을 당의 공식 보도자료로 내기도 했다. 내란 피의자의 대변인을 자처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모든 무리수와 궤변이 ‘이재명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어서’라는데, 반성 없는 대통령을 껴안고 가당키나 한 일일까.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총리는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권 행사를 끝까지 미루다 탄핵의 대상이 됐다. 현행 헌법재판관 6인의 비정상적 체제에 민주당 책임이 크지만,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하루라도 빨리 헌법재판관을 추가 임명해 탄핵의 절차를 갖추는 게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땅한 도리였다. 50여 년 나랏밥을 먹은 한 총리는 국힘의 ‘임명 불가’ 압박에 자신의 책무를 저버렸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권한대행의 대행’ 자리를 넘겼다. 최 대행이 한 총리가 못한 일을 할 가능성은 적고, 민주당은 ‘내각 줄탄핵’ 카드를 준비 중이니, 국정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마저 예상되는 상황이다.
현 정부 들어 29번이나 탄핵안을 발의한 민주당은 다수당의 책임감은 뒤로한 채, 이번에도 여당과 타협 없는 ‘닥치고 탄핵’ 강공을 택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한 조기 대선을 노린 조급증의 결과겠지만, 민심의 역풍과 국정 마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 한쪽은 뭉개며 버티고, 다른 한쪽은 밀어붙인다면 결말은 뭘까. 비상계엄만으로도 국격이 훼손되고 경제가 휘청이며 국민은 불안한데, 국가적 위기를 수습해야 할 정치권은 정치 셈법을 따지며 혼란과 대립을 가속하고 있다. 정치하는 높은 분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욕지기가 치미는 우울한 세밑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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