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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시선]다시 만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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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민의힘 대통령이 급기야는 내란죄를 일으켜 탄핵을 앞뒀다. 대통령의 불법적 명령을 따라 국회를 침탈하려던 군인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던 1989년생 여성 정치인 안귀령은 한 외신이 뽑은 ‘2024년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12’에 뽑혔다. 색색의 응원봉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존재들을 아낌없이 응원해왔던 2030 청년여성들은 침탈당한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광장에서 그 응원봉을 높이 들었다. 그 사랑과 용기와 정의감과 단호함이 든든하고 고맙고 소중하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기울기를 들여다보면 그런 에너지가 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여성들은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 등 불안정한 소득 노동직으로 내몰리는 정도가 남성에 비해 더 극심해 한국 남성 평균소득의 59%밖에 벌지 못하며 살아간다. 임금노동을 기본값으로 두고 만든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 또한 너무나 높다. 높은 청년여성 자살률이 이런 사회적 구조로 인한 좌절감과 심리적 부담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 청년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밝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하자 누구보다 앞서 차가운 아스팔트로 달려 나와 민주주의 수호의 등불이 되어 도도한 광장 정치의 물결을 만들고 있다. 든든하면서 미안한 마음 또한 들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 등 정치인들이 앞장서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부추겨온 가운데 여성가족부, 각 대학 총여학생회, 대학 내 여성학 수업 등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 여대가 학생들 몰래 공학 전환을 추진하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학생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벼랑 끝까지 몰린 대한민국 청년여성들이 기댈 곳은 대체 어디인가. 자신들이 가르쳐온 청년여성들의 마음에 새겨졌을 배신감과 절망감을 무엇보다 먼저 헤아려보기는커녕 래커칠 벗겨내는 데 드는 청소비용 걱정부터 하며 학생들에게 비용청구서를 내미는 대학당국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조만간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위험한 여성혐오 정권은 붕괴될 것이다. 여의도 광장과 광화문, 남태령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소리쳐 불렀던 이들의 염원처럼 대한민국은 혐오와 폭력이 아니라 소통과 협의가 가능한 사회로 거듭날 것이다.

다시 만날 이 세계에서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광장에 섰던 청년여성들이,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지키며 희망을 가지고 삶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우리 앞에는 기후위기와 같이 성장주의 체제가 가지는 근본적 문제가 엄혹하게 놓여 있다. 그러니 새로운 세계에서는 새로운 생각을 해보자. 어느 세대보다 생태감수성이 높은 청년여성들을 대상으로 집단귀촌 프로젝트를 국가가 지원해보자. 10가구 이하로 축소되어버린 농촌 마을로 이주해 생태적 삶을 실천해보고자 하는 청년여성들에게 매달 100만원의 기본생활소득을 10년 동안 지원해보자. 활력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지금 이를 매일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다. 그러니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돈을 써보자.

경향신문

박이은실 여성학자


박이은실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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