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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쇼트리스트가 발표됐다. 일종의 예선 통과 리스트인 셈이다. 한국입장에서 관심이 모이는 국제장편영화상의 경우 세계 89개국에서 출품작을 한 편씩 선정해 아카데미 위원회 측에 보내고, 심사를 거쳐 예선 격으로 15편을 선정한 것이 이번 쇼트리스트다. 여기서 다시 5편을 뽑아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순서인데, 이제 한국과는 무관한 얘기가 됐다. 올해 한국서 출품작으로 선정해 보낸 ‘서울의 봄’은 저 15편의 쇼트리스트에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선도 아니라 예선 탈락이다.
사실 수차례 반복돼온 문제다. 그럼에도 대체 왜 개선이 안 되는지 늘 의아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들 알다시피,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다룬 근현대사 실화 영화, 즉 역사 영화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의 국제장편영화상 심사위 측에선 해외 역사 영화들에 대한 평가가 유독 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해당 국가 역사와 환경 자체를 잘 모르기에 영화 배경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무리가 있고, 영화가 다루는 사건이 해당 국가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이것이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본 콘텐츠인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국지적 특색이 지나치게 강하고 해당 국가 역사와 환경에 대한 지식이 일정 수준 이상 필요한 영화들은 배제되기 쉽단 뜻이다. 극적 구성이나 인물 설정 면에서도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영화 자체로만 보면 구성은 다소 딱딱하고 참신성이 부족하며 인물 역시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경우가 많다. 영화 자체로서 보편적 공감을 얻어 높은 점수를 얻어내기 어려운 조건이다.
물론 유럽 영화들 경우는 같은 역사 사건 소재로도 상대적으로 아카데미상 측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기 쉬운 조건이다. 같은 서구란 입장에서 사전 지식도 상대적으로 풍부할뿐더러 제2차 세계대전 등 미국이 개입한 역사도 다수 존재해 관심도도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내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사울의 아들’, 독일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영국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이 이런 경우다. 그나마도 모두 배경만 실제 사건들일 뿐 상황과 인물 들은 모두 픽션이며, 그 수가 많지도 않다.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작들 절대다수는, 유럽 영화들까지 포함해, 동시대 배경으로 중산층 윤리에 기반해 다양한 현대사회 갈등과 충돌을 다루는 픽션들이다. 유럽 영화 중 근래 경우들로 ‘아무르’ ‘그레이트 뷰티’ ‘어나더 라운드’ 등을 들 수 있고, 그 외 지역, 특히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지난 15년 내 아시아권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작들인 일본의 ‘굿’바이’와 ‘드라이브 마 이 카’, 한국의 ‘기생충’, 이란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세일즈맨’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그런 게 보편적인 아카데미상 취향 영화들이란 얘기다.
그러나 한국 출품작은 거의 매번 이 같은 아카데미상 취향에 역행해왔다. 지난 10년 동안만 해도 그렇다.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 ‘남산의 부장들’ ‘모가디슈’ 등이 역사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었고, 대부분 실화 바탕이다. 올해는 또 ‘서울의 봄’이다. 그리고 이들은 늘 예선인 쇼트리스트 단계서부터 탈락해왔다. 후보지명까지 도달했던 유일한 한국영화 ‘기생충’과 쇼트 리스트까지라도 통과됐던 ‘버닝’과 ‘헤어질 결심’은 모두 위 ‘동시대 배경으로 중산층 윤리에 기반해 현대사회 갈등과 충돌을 다루는 픽션’에 속한다. 10년 동안 출품된 10편 중 4편이 이 계통인데 그중 3편이 쇼트리스트까지 도달했으니 입성 성공률이 부단히 높다. 그럼에도 이쪽은 선택되지 못하고 가장 탈락 가능성 높은 쪽만 선택되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흐름이다.
이에 아카데미상 출품작을 선정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아카데미상 특성과 관계없이 오직 한국 내 평가에 기대 선정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비판한다. 국내 대중 입장에서 ‘한국대표’로서 납득할 만한 영화를 고르려다 보니 한국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실화 소재 역사 영화, 그중에서 도 근현대사 영화들이 선호되는 흐름이 나왔단 것. 그러다 보니 아카데미상 출품작 대부분이 흥행 성공작이란 결과도 도출돼버린단 관찰이다.
물론 일각에선 위 아카데미상 취향에 걸맞다 여겨지는 ‘오아시스’ ‘밀양’ ‘마더’ 등도 출품됐었지만 번번이 탈락했던 과거를 들어, 아카데미상은 그저 ‘종잡을 수 없는 기준’인 탓에 대비할 전략도 딱히 없단 식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영화에 대한 세계의 시각과 관심 자체가 ‘비포 기생충’과 ‘애프터 기생충’으로 나뉜단 점을 돌아보면, 단순히 한국영화 인지도 와 그에 대한 관심도 문제 탓에 탈락했던 ‘비포 기생충’ 시절을 들어 그와는 사정이 달라진 지금과 전략적 방향성 차이를 생각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단 반응들이다.
어찌 됐든 이 같은 태도, 즉 ‘우리에게 중요한 영화’를 해외로 보내고자 하는 한국 측 일관된 태도는 분명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파고 들어가면 결국 한국의 지난한 역사나 특징적 환경 등 ‘한국’ 그 자체를 해외에 알리고 싶단 욕구가 바탕이 된단 해석이다. 해외가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알아주길 바란단 뜻이다. 그 자체로 문제 있는 태도라 보긴 어렵지만, 애초 한국 문화는 ‘그런 식’으로 해외에 알려져 온 흐름이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예컨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한류’란 개념만 해도 그렇다. 한국 TV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선 꾸준히 ‘한국 그 자체’를 알려야 한단 취지로 한국 전통문화를 접목해야 한다느니 하는 발상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그저 해외 취향에 맞는 K팝과 트렌디 드라마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그 자체’에 대한 관심도 부풀어 올라 해외가 알아서 한국 전통문화나 역사 등에도 관심을 얻게 된 순서란 것.
아카데미상 출품작 선정도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말마따나 ‘우리에게 중요한 영화’를 계속 보내봐야 극소수 아카데미상 심사위원들만 보고 결국 쇼트리스트에서조차 탈락해 자취를 감춰버리는 게 전부다. 그보단 아카데미상이 ‘원하는’ 영화를 보내 후보지명 등의 홍보 효과를 얻고 그로써 더 많은 해외 대중에 노출, 결국 ‘한국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나가도록 유도하는 쪽이 문화 전략으로서 정방향이라 봐야 한다. 언급했듯 수년째 비슷한 문제 제기들이 반복되고 있는데 바뀌는 건 없단 점이 뼈아프다. 일단 ‘보내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이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기본 태도부터 확실히 다져볼 필요가 있다. 나머지 더 복잡한 전략들은 그다음 얘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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