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한연규)는 강도살인 혐의로 A(44)씨를 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전주지검 청사 전경.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A씨는 2001년 9월 8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공범 1명과 함께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의 한 연립주택에 침입해 안방에서 자고 있던 30대 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남편(37)을 숨지게 하고 부인(33)에게 중상을 입힌 뒤 현금 1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A씨는 다른 공범과 함께 주택 외벽 배관을 타고 침입한 뒤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 부부를 위협하며 금품을 요구하다 이들이 저항하자 흉기를 휘둘러 남편을 숨지게 하고 부인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씨 등은 이 과정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남편의 온몸을 흉기로 20여차례 찔러 끔찍이 살해하는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강력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범행 현장 감식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으나, 용의자들을 파악할 만한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다만,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절연 테이프 하나를 발견한 게 전부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해당 테이프는 범행 당시 강도들이 피해 부부를 결박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지만, 몸싸움 과정에서 소파에 떨어뜨린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수사 분석 기술로는 유전자(DNA) 검출이 불가능해 용의자들을 추적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해당 테이프 등만 증거물로 보관한 채 사건 수사를 2년여 동안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장기 미제로 남게 됐다.
이후 사건은 20여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2020년, 경찰이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면서 깨어났다. 수십 년된 DNA도 식별할 수 있는 분석기법으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실마리를 찾은 게 계기가 됐다. 강도살인죄의 경우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찰은 압수물로 보관 중이던 테이프에 대한 분석을 다시 국과수에 의뢰해 DNA 정보를 확인했다. 해당 DNA는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구축한 ‘DNA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한 피고인의 것과 일치했다. 그 피고인은 A씨로 확인됐다. 재범 예방과 신속한 수사를 위해 중범죄 수형인 등에 대해 유전자 정보를 채취할 수 있는 제도(DNA법)가 2010년 도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A씨 소재를 파악한 결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간)죄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2017년부터 전주교도소에 수형 중이었다. 그는 기존에도 이 사건과 동일한 방식으로 주택에 침입해 강도, 강간 등 범죄를 다수 저지른 사실도 확인됐다.
사건 관할 경찰은 즉각 A씨를 대상으로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하지만, 그는 “(사건 범행 현장인) 안산에는 가본 적도 없다. 워낙 오래된 때라 현장부재증명(알리바이) 등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발뺌으로 일관했다. 또 “수사기관이 위법 수사를 했고 증거까지 조작했다”는 주장 등을 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9개월여에 걸친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으며, 이는 다시 A씨가 복역 중인 전주교도소를 관할하는 전주지검으로 이송됐다.
전주지검은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압수물에 대한 DNA를 재감정하고 A씨 주변인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A씨에 대한 교도소 접견 사건 녹취와 관계인 진술 분석, 법의학 자문 등 보완 수사를 철저히 진행했다. 범행을 부인하는 A씨의 주장을 탄핵할 수 있는 DNA 이외 증거를 확보하는 데도 주력했다.
그 결과 DNA 증거에 있어 어떠한 결함이 없음을 객관적으로 재확인했다. 또 A씨 주장과 달리 사건 범행 무렵 그가 안산시에 직접 전입 신고했고 자동차도 사건 당일 안산시로 이전 등록한 사실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 보강 증거를 통해 피고인이 사건 범행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검찰과 경찰은 A씨와 함께 범행한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등 추가 수사를 진행했으나, 범행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공범을 특정하지 못했다. 또 피해자 부인에 대한 강도상해 범행의 경우 공소시효가 여전히 적용돼 기소에서 제외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검찰은 향후 공소 유지 과정에서 관련 단서가 확인되면 즉각 수사에 착수해 공범의 죄책을 철저히 밝혀내겠다는 각오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20년 넘게 법망을 피해 온 피고인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을 활용한 수사를 통해 미제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범인을 필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