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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횡설수설/김재영]비상계엄이 소환한 야간 통행금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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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 포고령 초안을 자신이 작성했다고 26일 변호인단을 통해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초 포고령 초안엔 국민 통행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삭제했다고 했다. 국민 생활의 불편과 경제 활동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국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목적의 ‘경고성 계엄’임을 강조해 윤 대통령을 비호하려는 의도겠지만, 위헌·위법적인 포고령을 대통령이 직접 검토, 수정했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뉴스 화면 아래 ‘오후 11시 이후 통행 시 불심검문·체포’라는 자막을 합성한 사진이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계엄을 경험한 장년층들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야간 통금 강화는 시위 금지, 대학 휴교 등과 함께 과거 계엄 포고령의 단골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문건을 베껴 쓴 티가 나는 이번 포고령에도 통금이 포함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윤 대통령이 통금 조항을 뺐다면 국민을 배려한 게 아니라 국민의 분노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말에 폐지됐다가 일제강점기에 부활한 야간 통행 금지는 광복 이후엔 1945년 9월 미 군정 포고령 1호로 시작돼 6·25전쟁과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계속됐다. 적용 시간과 지역에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자정에서 오전 4시였다. 오후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선 귀가 종용 방송이 나왔고, 자정이면 사이렌 소리와 방범대원들의 호각소리가 거리에 요란했다. 야간 통금은 1982년 1월 5일 36년 4개월 만에야 해제됐는데,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 이미지를 의식한 조치였다.

▷통금 시간이 다가오면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음이 급해졌다. 택시를 잡는 사람들은 ‘따블’과 ‘따따블’도 불사했다. 통금에 걸리면 파출소로 끌려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낸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해 숙직실에서 잠을 청한 직장인, 단속을 피해 손을 잡고 달린 연인, 술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술잔을 기울인 술꾼 등 장년층 이상에겐 그 시절 추억 하나쯤은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이브 등에 잠깐 통금이 해제되면 거리마다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밤을 즐기기도 했다.

▷야간 통금 해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온전히 ‘24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편의점 등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도 생겼다.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늘어나고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등 경제효과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온전한 이동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 가장 큰 효과였다. 40여 년 만에 국민의 밤 시간과 자유를 다시 빼앗겠다는 발상을 했던 계엄 세력은 얼마나 후진적인가. 해외의 시선을 의식해 통금을 해제한 군사정권보다도 퇴행적으로 보인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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