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30 (월)

이마[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81〉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신미나(1978∼ )



겨울에는 우리의 본능이 따뜻함을 알아본다. ‘이 옷보다 저 옷이 따뜻하다. 여기보다 저쪽이 따뜻하다. 저 사람은 따뜻하다. 그 옆에 있고 싶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마음은 따뜻한 곳을 향한다. 계절이 겨울이고 시대마저 겨울일 때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추울 때, 따뜻함은 큰 가치가 된다.

겨울 창으로 들어오는 작고 소중한 햇살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시로 읽고 싶다면 신미나 시인을 읽으면 된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요, 착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이 크게 적힌 것도 아닌데 우리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시인은 웹툰으로 시를 그리는 작업도 했는데 그림체마저 동글동글 귀엽고 다정하다. 겨울에는 이런 사람, 이런 시 옆에 붙어 있고 싶다.

독감에 걸려 죽은 듯이 누워 이 시를 생각했다. 정신없이 아프면 몸은 괴롭고 마음은 편안하다. ‘이렇게 잦아들며 사라져도 나쁘지 않겠네’ 싶지만, 시의 끄트머리를 잡고 일어선다. 밥해야지. 밥해서 먹어야지. 밥해서 먹여야지. 어떤 다정한 사람이 있어 앓다 일어났다고 하니, 나도 일어나야지. 이렇게 다정은 사람을 살린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