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美우선주의 귀환…글로벌 가치·무역-외교안보 질서 요동 가능성
관세 무기화로 WTO 자유무역 질서 '기로'…거래중심 동맹관에 나토·인태동맹 '긴장'
트럼프와 담판할 사람없는 대행체제의 한국, 안보·경제 '시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2025년은 전세계적으로 '트럼프발(發) 지각변동'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집권 1기 때보다 한층 더 선명해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 폭탄'을 통한 세계 무역 질서 변화를 예고하고, 거래 중심의 동맹관으로 미국을 정점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진영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집권 때 "더이상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관세 폭탄, 파리 기후변화협정·유엔인권이사회(UNHRC) 등 탈퇴, 이란 핵 합의 파기 등을 통해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최우선시하는 신(新)고립주의를 표방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중심이 돼서 구축해온 글로벌 가치와 무역-외교·안보를 비롯한 국제질서를 크게 위협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더 강한 미국 우선주의를 예고하며 백악관에 재입성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 전 보좌관은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의사결정은 국가 이익에 대한 이해보다는 개인적 관계와 '즉흥적인 반응'에 의해 좌우된다며,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국제사회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경고했다.
대표적으로 파열음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은 무역이다.
대선 전 전세계를 상대로 한 10∼20%의 이른바 '보편 관세'와 60% 이상의 대중국 고율 관세를 예고한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를 미국의 무역 이외 다른 어젠다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꺼이 활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대선 승리 후인 지난달 25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으로의 마약류 반입 및 불법 이민 문제와 연계해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별도로 관세를 더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30일에는 "브릭스 국가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달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미국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새로운 자체 통화든, 기존 통화든 브릭스가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유 무역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이 고강도 관세 카드를 빼 들면 중국과 유럽 등도 상응하는 조치에 나섬으로써 '관세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그동안 언급해온 관세 공약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 체제는 사실상 붕괴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변수는 미국 국내 상황이다. 선거 전 관세 공약은 특정 유권자층을 겨냥한 성격이 농후했지만 대통령으로서 그것을 집행할 때 전체 미국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후보 시절 관세 공약은 자유무역 체제에서 소외돼 박탈감을 느끼는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오대호 연안 공업지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주 등의 중산층 이하 근로자 가정의 표심을 노린 측면이 있었다.
관세를 통해 수입 비용을 높임으로써 국내외 기업의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회귀시키려는 포석인데, 문제는 관세가 일부 품목의 물가 인상을 유발함으로써 트럼프의 최대 경제과제인 인플레이션 완화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관세 무기화가 대상과 강도 면에서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관세를 통해 확고한 공약인 감세 정책에 따른 세수 결손을 보충하는 측면과, 관세가 소비자 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는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가며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 등 월가 출신 인사들과, '트럼프표 관세정책'의 설계자라 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前)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수제자'인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지명자 등으로 구성될 경제팀, 그리고 '정권 2인자'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이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거론된다.
러트닉(좌) 차기 미 상무장관 지명자 |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대외 정책 양상도 트럼프 당선인의 내달 20일 취임 이후 달라질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유럽 동맹, 한국·일본·호주·필리핀 등과의 인도태평양 동맹은 냉전 종료 이후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이었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거래중심 동맹관'은 미국과 동맹국 간의 결속을 이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힘을 통한 평화'를 주창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의 가치를 전면 부정한다기보다는 '수혜자 부담원칙'에 따른 미국 동맹국들의 방위 부담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당선인이 나토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5%로 상향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언론 보도도 최근 나왔다.
이는 나토가 지난 2014년에 합의한 뒤 현재 적용 중인 GDP 대비 2% 권고뿐만 아니라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선거운동 때 거론했던 3%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또 대선 전(前)에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부자나라를 의미)으로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분담금)을 2026년 적용될 금액의 9배 수준인 100억 달러(약 14조5천억원)로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문제를 놓고 트럼프 취임 후 미국과 동맹국 간에 적정한 절충이 이뤄진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고 파열음을 낸다면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 등 현재의 미국 주도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국가들에 힘을 싣고, 그들의 모험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러시아, 북한 등 현재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 정상들과의 외교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관심이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조기 종전을 공약한 트럼프 당선인이 나토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종전 방안을 만들어 낼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의 3년 가까운 항전을 결정적으로 지원해온 미국의 지원을 끊거나 줄이며 러시아의 현재 점령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식으로 종전안을 밀어붙이는 동시에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경우 미-유럽 대서양 동맹은 균열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전의 향배가 트럼프 2기의 국제질서에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외교·안보 영역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등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중시 기조를 동시에 포용하는 트럼프 2기 핵심 인사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대외정책에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지도 그런 측면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마코 루비오 차기 미 국무장관 지명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와 그에 따른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 들어간 한국으로서도 외교·안보와 경제에 걸쳐 두루 '트럼프 변수'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동맹국의 안보 부담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외교 모색, 관세 강화 등 여러 '트럼프 어젠다'들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문제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미 대선에서 당선되기 전부터 한국의 방위비 분담 강화를 압박했다. 또 당선 후엔 외교책사인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대사를 북한 문제를 포함한 난제 해결을 위한 대통령 특사로 지명함으로써 북미대화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을 보였다.
결국 취임 이후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에는 안보비용 부담을 늘리도록 압박하면서 북한에는 또 한차례의 정상외교를 위한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과도적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언제 정상적인 리더십으로 복원될지 알 수 없는 지금, 한국은 트럼프 당선인과 실질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국가 정상의 공백기를 보내고 있어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는 커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의 계엄 및 탄핵 사태 이후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기존 합의 파기를 의미하는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할 경우 설득에 나서고, 그가 한국에 대한 북핵 위협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북한과의 합의 도출에 나서지 않도록 촉구할 카운터파트가 부재한 상황은 한국에 상당한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한국 내 리더십이 정상화할 때까지 트럼프 당선인이 방위비 문제를 포함한 한미동맹 현안과 대북 접근에서 속도전에 나서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대미외교의 숙제가 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 |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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