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투자리딩방 사기 기승
한 명에 사기 치려 다수 모의
바람잡이·의심 등 역할 분담
정교한 ‘연기’로 금액 뜯어낸
피해규모 최소 28명·36억원
피의자 특정 어려워 수사 난항
한 명에 사기 치려 다수 모의
바람잡이·의심 등 역할 분담
정교한 ‘연기’로 금액 뜯어낸
피해규모 최소 28명·36억원
피의자 특정 어려워 수사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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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먼쇼’를 연상시키는 신종 투자 리딩방 사기가 전국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100여 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으로 구성된 채팅방을 수백 개 이상 설계한 뒤 채팅방마다 단 1명의 피해자만을 초대해 투자금을 뜯어내는 식이다.
26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서울 강서경찰서는 최근 신종 투자 리딩방 사기 사건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본지가 파악한 피해 규모만 전국에서 최소 28명, 피해액은 최소 36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강서서는 최근 일부 피해자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범행은 피해자들을 100여 명이 참여해 있는 평범한 단체 채팅방(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초대하면서 시작된다. 범행 일당은 먼저 페이스북 등 SNS에 인기 자동차·축구 유튜버 등을 사칭해 “편하게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글과 링크를 올려 피해자가 해당 채팅방에 가입하도록 유도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채팅방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채팅방 내에 있는 모든 계정이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움직였다. 100여 개의 사기 계정은 각자 △주식 이야기를 흘리며 리딩방을 소개하는 ‘바람잡이조’ △주식 투자를 거부하는 척 하는 ‘의심조’ △같은 투자자임을 밝히며 피해 투자자들에 접근하는 ‘피해자조’ 등으로 나뉜다.
먼저 ‘바람잡이조’가 자동차·축구 등 채팅방의 주제에 걸맞은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주식 이야기를 흘리고 나머지 계정도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어 ‘의심조’가 피해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주식 투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의심조’는 ‘바람잡이조’의 주식 이야기 공유, 외부 전문가 초대 제안을 반대하다가 결국 이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사전에 차단했다.
‘의심조’의 역할이 끝나면 채팅방에 초빙된 것처럼 꾸며진 가짜 주식 전문가가 본격적으로 피해자들에 주식 투자를 유도하며 금전을 편취했다. 가짜 주식 전문가들은 한국IMC증권, 흥국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유명 증권사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가 ‘투자 VIP방’과 거래용 허위 웹사이트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뒤 거래금, 수수료, 보호금 등 명목으로 한 번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특히 피해자가 입금을 망설이면 ‘피해자조’가 나서서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피해자들이 사기 행각이라는 의심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되면 ‘피해자조’들이 “나도 걱정했는데 수수료를 냈더니 수익금을 제대로 받았다”, “직접 사무실에 가봤는데 실제로 운영되더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 사건 피해자 양 모씨(50)는 “투자를 권유하는 계정, 사기를 의심하는 계정, 피해자와 같은 처지라며 안심시키는 계정까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한 패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지난 13일 출금신청을 했는데 ‘금감원 조사가 들어오니 16일에 모든 회원이 출금 신청하라’라는 공지와 함께 출금을 위해서는 총액의 10~15%를 수수료로 선납하라고 하는 걸 듣고 사기임을 깨달았다”며 허탈해 했다. 피해자 박 모씨(58)는 “목사로 일하다 개척교회를 열기 위해 모은 전 재산을 날렸다”며 “어머니께서 주신 5000만원도 날려 가족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범행 과정도 정교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범행에 사용된 100여 개 계정은 모두 실존 인물을 사칭했다. 언론과 SNS에 신상이 노출된 일반인의 사진과 이름을 도용해 피해자가 평범한 채팅방에 속해 있는 것처럼 속인 것이다. 피해자 이진영 씨(41)는 “‘자신도 같은 처지’라며 말을 걸어온 계정도 프로필 사진부터 자기소개까지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실제 일반인을 사칭해서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트루먼쇼’ 사기가 지난 7월부터 연말인 현재까지도 전국 곳곳에 피해자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확인된 피해자들은 인당 평균 1억원 내외 피해를 입었고, 그들 중 대다수가 당장 생활비조차 구하기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피해자가 전국 곳곳에 퍼진 상태라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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