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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꼰대 같은 X, 말 안 듣는 MZ…서로 싸워도 함께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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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막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트랙터 행렬에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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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했던바 ‘뒷담화’는 나의 소중한 취미생활이다. 다년간의 꾸준한 연마로 뒷담화에 있어 범위와 강도의 황금률을 찾아냄으로써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면서도 죄책감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렀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뒷담화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보편적이고도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뒷담화는 세대론이다. “쯧쯧, 저러니까 늙으면 죽어야 된다는 소리를 듣지”라고 나의 앞세대를 비난하거나 “하여튼, 엠지 아니랄까 봐” 한숨을 쉬며 뒷세대를 비아냥거릴 때 가장 안정되면서도 지속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동세대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단톡방 한정이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부하 직원 뒷담화로 기출변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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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까지만 해도 이른바 ‘86세대’인 앞세대에 대한 뒷담화가 ‘MZ세대’ 라고 부르는 뒷세대에 대한 그것보다 빈도와 강도 면에서 압도적이었으나 50대가 되면서 화살이 뒷세대로 점점 쏠리게 됐다. 여전히 우리 사회 기득권 최상층부를 차지하며 중요한 결정권자로 86세대가 남아있긴 하지만 기업과 사회에서 그들의 상당수는 은퇴연령이 됐기 때문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를 씹어서 무엇하랴.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늙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직장 초년생이었을 때 질색하던 ‘꼰대’들의 행동패턴-옷차림 잔소리나 술자리 강요 등등-은 답습하지 않지만 내 자의식이 놓쳐버렸을 둔감하거나 고집스러운 행동들로 인해 나도 어느새 ‘꼰대’ 대열에 합류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파도파도 나오는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 케이스와 신입사원 환영회 때 부모를 대동하고 왔다거나 참석 안 한 회식비 1인분을 돈으로 요구했다 등등의 회식 괴담, 잊을만하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홍해처럼 가르며 초토화시키는 5분 지각 논쟁 등 엠지들을 향한 뒷담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그중 절반은 악어가 옆집 수영장에 나타났다는 플로리다발 해외토픽 뉴스처럼 재미로 넘기는 이야기였지만 우스개로 넘길 수만은 없는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이기적이어서야, 이렇게 책임감 없어서야, 이렇게 근시안적이어서야… 이른바 엑스(X) 세대인 우리는 엠지 세대가 주요 관리자가 되고 결정권자가 될 근미래에 회사는 침몰할 것이라고 한숨을 푹푹 쉬었고, 사회는 지금보다 비인간적이고 냉혹하며 공동체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을 했다.



그리고, 여의도 탄핵집회와 ‘남태령대첩’을 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이를 계기로 칼럼에서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기성세대의 반성문 같은 걸 써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럴 생각은 없다. 우리도 열심히 살아왔고 소심한 개인주의라고 86세대의 무시를 당하면서도 이 사회가 후퇴하거나 잘못 돌아가는 걸 막기 위해 나름대로 분투했는데 빛나는 응원봉이 없었다는 이유로 반성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화를 낼 거까지야...)



나는 다만 뻔뻔하게도 시대정신의 경지에까지 오른 ‘각자도생’이라는 지긋지긋하고 막막한 말이 이제 그 파렴치한 기세를 얼마라도 떨굴 것을 생각하면 기쁘다. 집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직장에서 서로를 비난하더라도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 나와 내 친구의 삶이 위태로워질 때 내 곁에 있어 줄 사람들이 수십 배, 수백 배로 늘어난 거 같아 든든하다. 믿음이라든가, 연대라든가, 어쩐지 오래전에 길바닥에 내던져진 녹슨 간판 같던 말들이 장갑 낀 손으로 슥슥 닦여지는 것 같아 마음이 뜨뜻해진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각성한 엠지와 그들을 보면서 자신의 꼰대적 삶을 크게 뉘우친 엑스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결말은 없을 것이다. 학생인 딸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집회에 쫓아다니다 몸살 나서 엄마에게 약 심부름을 시켜 엄마의 부아를 치밀게 할 것이고, 백수 조카는 이모에게 뜯어낸 용돈으로 후원금을 낼 것이며 시키는 일마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 따박따박 대꾸해 뒷목 잡게 하는 직장 후배는 다음 주 집회에 들고 나갈 깃발의 문구를 정하는 데 정성을 쏟을 것이다. 꼰대들의 눈에 그들은 꾸준히 철딱서니 없을 것이고 엠지들에게 앞세대는…. 모르겠다. 힘내서 계속 욕하렴! 특히 이미상 작가의 소설 ‘하긴’(‘이중 작가 초롱’ 수록) 처럼 86세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라면 언제나 대환영이란다.



어쨌거나 우리는 앞으로도 싸우고 서로를 원망하며 뒷담화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아닌 것, 최소한의 존엄과 자유와 정의가 구겨지고 있는 현실을 만나면 일단 같은 대열에 서고 볼 것이다. 지향하는 삶은 서로 다르지만 마지노선, 견딜 수 있는 불합리와 부당함의 마지막 줄에서만큼은 함께라는 믿음. 그 믿음이 2025년 우리를 함께 나아가게 할 것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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