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월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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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ㅣ 논설위원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침대에 들어가기 직전에 뉴스 챙겨보기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평생 밤늦게까지 뉴스를 챙기는 게 버릇처럼 됐지만 지금은 한층 더 긴장된 마음으로 보게 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지난 3일 일찍 잠든 이들은 아침에야 그 뉴스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필자는 2년 전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들을 비판하는 칼럼에서 ‘눈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쓴 바 있는데, 하마터면 그 정도를 넘어 ‘눈떠보니 독재국가’가 현실이 될 뻔했다.
고소득 국가가 되면 민주주의가 공고화한다는 게 정치학계의 통념이다. 역사상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쿠데타나 계엄령 같은 헌정중단 사태가 발생한 적은 없다. 두터운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다각화된 민간 영역이 민주주의의 탄탄한 가드레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6천달러 나라에서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민주주의 이론이 새로 쓰여야 할 판이었다. 그만큼 12·3 내란 사태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다. 시민들과 국회는 계엄령을 불과 153분 만에 해제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빠른 회복력을 보여줬으나 사건 발생 자체만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민주주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 윤석열의 독재자 기질과 무조건적인 아내 감싸기, 극우 유튜브 심취, 그리고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와 대결 구도 등이 절정에 이르면서 폭발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까지 감행한 건 군과 권력기관이라는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소불위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 군과 경찰력의 조력을 받아 독재자가 되려는 망상에 빠진 것이다. 나라는 급속하게 선진국이 되고 시민들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춰갔으나, 군과 권력기관들은 그렇지 못했다.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한 군과 권력기관에는 여전히 독재의 잔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들이 친위 쿠데타를 주도하거나 가담한 가장 큰 동인은 권력에 대한 탐욕이다. 정권 최고 막후실세였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방첩사령관·수도방위사령관·특수전사령관 등을 끌어들였다. 이 장성들은 주권자인 국민들보다 자신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과 김용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내란 기획자인 ‘점술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인사를 미끼로 육사 출신 후배들을 꼬드겼고 상당수가 여기에 넘어갔다. 역대 쿠데타는 항상 군 정보조직의 육사 카르텔이 진원지였다. 5·16 쿠데타는 정보장교로 잔뼈가 굵은 박정희·김종필 등이, 12·12 군사반란은 보안사 장교들(전두환 등)이 주도했다. 군과 권력기관들의 정보망을 손바닥 보듯 보고 있으니 국가 권력도 찬탈할 수 있겠다는 마음까지 먹은 것이다. 이들은 이번에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을 자신들의 자리 욕심을 채우려 이용해 먹었다. ‘구국의 일념’이니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이니 ‘부정선거 의혹 규명’이니 갖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엔 권력의 단맛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대한 탐욕이 문제다.
국민의힘이 ‘내란 비호당’을 자처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정당은 용산과 사실상 운명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주류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고위 관료들도 일반 시민들과 유리된 채 마치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사실상 내란 우두머리 편을 들고 있어 내란 사태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더 늦기 전에 국민 편에 서서 공직자로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정상참작을 받기 바란다.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음모를 꾸미며 재기를 노렸다.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법은 없다. 윤석열은 절치부심하며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며, 요소요소에 있는 비호 세력을 선동하고 있다. 이런 정국 혼돈 상태가 지속된다면 나라가 나락의 늪에 빠져들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신속하고 질서 있는 탄핵과 대선을 통해 하루빨리 정국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다. 그런 뒤에 차기 대통령과 국회가 중심이 되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들을 규명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는 권력기구 간 견제와 균형, 그리고 투명성의 진화와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도 잠재적 독재자를 대선 후보군에서 사전에 걸러내고, ‘제왕적’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견제·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에게만 맡겨져 있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도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최우선순위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맘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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