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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인간·자연 더불어 살던 때로…미륵을 통해 본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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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바위쿠르르 첫 솔로展
미륵 재해석한 신작 펼쳐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언두플래닛’ 그룹전도 개최
양혜규, 댄리 등 17팀 참여


매일경제

이끼바위쿠르르의 2채널 비디오 ‘거꾸로 사는 돌’(2024).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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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미륵(彌勒)은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로 통한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56억7000만년이 되는 때 인간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교화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륵불이 자리하고 있는 장소는 대부분 도시 개발이 다다르지 않은 곳이다. 아티스트 그룹 이끼바위쿠르르(고결·김중원·조지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자연에 녹아든 채 시간을 버티는 미륵 석상에서 ‘오래된 미래’를 봤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던 과거로 회귀해야만, 즉 거꾸로 살아야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미륵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솔로전 ‘거꾸로 사는 돌’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내년 1월 26일까지 개최된다. 이끼바위쿠르르란 이름은 이끼가 덮인 바위를 뜻하는‘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의 합성어다. 생태주의 시각 연구에 집중하는 이들은 바위 틈의 이끼처럼 좁은 경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나간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륵을 통해 생태 회복을 위한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이야기한다. 설치와 평면, 영상 등 10여 점을 선보인다.

2채널 비디오 작품 ‘거꾸로 사는 돌’(2024)은 이끼바위쿠르르가 수도권 외곽, 논과 밭, 시골 등에서 발견한 미륵불의 온화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영상 속 미륵 석상을 본떠 제작한 설치 작품 ‘거꾸로 사는 돌’(2024)은 전시장 한 가운데 배치됐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16점의 드로잉 연작 ‘더듬기’는 석상 위에 한지를 덧대고 숯으로 문질러 완성한 드로잉이다. 거대한 크기 때문에 한눈에 담기 어려운 석상의 손과 귀, 의상과 같은 세세한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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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바위쿠르르의 솔로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선재센터 전시장 전경.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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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바위쿠르르의 조지은 작가는 “미래에 출현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으로 미륵 신앙은 한때 큰 호응을 얻었지만, 지금 대부분의 미륵 석상은 방치돼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생명력을 품고 인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생각은 우리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진정으로 환경을 보전하려면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비디오 작품 ‘쓰레기와 춤을’(2024)에서는 인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 기능을 다한 폐건물과 사물들이 신명나게 춤을 추고, 그 모습을 미륵 석상이 온화한 미소로 바라본다.

한편 같은 기간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지구와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탐구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그룹전 ‘언두 플래닛’도 함께 열린다. 양혜규 작가를 비롯해 홍영인, 임동식, 로버트 스미스슨, 낸시 홀트, 댄 리, 데인 미첼, 사이드 코어, 시마부쿠, 시몽 부드뱅, 실라스 이노우에, 얀 보, 이끼바위쿠르르, 타렉 아투이, 팡록 술랍, 하셀 암 람키 등 국내외 17팀이 참여했다. 비인간, 대지 미술, 커뮤니티를 주제로 기후변화와 생태계 문제를 깊이 고찰한다. ‘언두(Undo)’는 ‘원상태로 돌린다’는 의미로, ‘언두 플래닛’은 지구를 인간이 훼손하기 전 상태로 돌린다는 뜻이다.

일례로 양혜규 작가는 ‘봉희’라는 의인화된 꿀벌을 주인공으로 분단과 냉전, 긴장과 충돌로 점철된 인간 세계를 돌아보는 비디오 작품 ‘황색 춤’(2024)을 선보인다. 인공지능(AI) 시각효과 업체인 자이언트 스텝과 협업한 작품으로, 황색비가 내리는 철원이라는 가상의 풍경을 배경으로 봉희는 황색비를 야기한 첩자로 몰려 체포되고 감옥 안에서 황색 춤을 춘다. 양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초부터 서울대 기후연구실과 꿀벌 연구를 진행했다. 양봉용 벌통을 활용해 만든 신작 조각 2점도 ‘황색 춤’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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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그룹전 ‘언두 플래닛’에서 선보인 양혜규 작가의 비디오 작품 ‘황색 비’(2024·왼쪽).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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