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1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77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한·미 해병대원이 함께 탑승한 상륙돌격장갑차와 차륜형장갑차가 상륙작전을 시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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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사관학교에 막 들어온 예비 신입 생도였던 나에게 입교식은 굉장한 ‘볼거리’였다. 해군사관학교는 바다를 낀 만에 위치해, 연병장이 바다랑 바로 맞닿아 있었다. 입교식을 연습하는 신입 생도 뒤로 재학 생도들이 도열해 있고, 그 뒤 바다에는 각종 군함이 떠 있었다. 쉬는 시간 이 멋진 광경을 감상하다 문득 함정을 자세히 보니, 갑판에 일정한 간격을 맞춰 꽂혀 있는 검은색 봉 같은 것이 보인다. “방혜린 생도, 질문 있습니다.” “뭔데?” “저 함정에 세워져 있는 봉은 무엇입니까?” “그건 봉이 아니라 사람이야. 승조원들이잖아.”
일국의 사관생도가 된다. 그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입교식도 놀라웠지만, 졸업식은 더 대단했다. 다른 것도 아닌 신입 소위의 임관을 축하한다는 목적만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최신식인 군함들, 그리고 그 승조원들이 진해만으로 불려 들어왔다. 대망의 졸업식에는 대통령부터 고관대작과 지역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참석했다. 아직 바다가 차가울 2월임에도 특수부대가 헬기에서 바다로 줄줄이 강하하는 시범이 이어졌다. 대통령 앞에서 “필승,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경례한 다음 힘차게 악수할 동안, 스크린에는 졸업하는 생도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병과 등이 전시됐다. 졸업식이라는 멋진 풍경을 완성시키기 위해 ‘검은색 봉’ 인간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몇시간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서 있어야 했다.
사관생도는 어딜 가든 대접받는다. 어느 부대 실습을 나가더라도 오직 사관생도만을 위해 특별한 음식, 코스, 훈련 내용이 준비된다. 사관학교 출신들은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괜히 “일국의 사관생도에서 일개 소위가 된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너희는 특별하다. 너희야말로 장차 이 나라와 군의 중추가 될 정예 호국 간성(방패와 성)이다. 지금의 너희는 비록 고되고 힘들겠지만, 이런 교육과정이야말로 너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관학교는 끊임없이 생도들을 ‘특별한’ 존재로 각인시킨다. 보통 한해 3천~4천명의 장교가 임관하지만, 그중 대통령 행사를 정례적으로 하는 곳은 오직 사관학교들뿐이다.
조직의 구성원에게 특별하다는 감각을 부여하는 것은 구성원에게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 자칫 조직 내의 독성 문화를 형성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특별함은 다른 대상 혹은 집단과의 구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상대적이고, 차등적이며 배타적이다. 누군가가 특별하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누군가는 뒤떨어져야 한다. 한편, 특별함은 나와 상대방 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특별하다는 지위는 제삼자에 의해 인정되고 부여된다. 나는 상대방보다 잘났음이 권위 있는 누군가에게 인정되어야 비로소 특별함이 완성된다. 특별함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조직은 구성원 사이의 계층 차이를 발생시키고, 관계를 배타적으로 만들며,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노력하기보다는 상대를 깔아뭉개고 그 지위를 인정해주는 권위에 경쟁적으로 아부하도록 변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육사 생도가 지지 행진을 해달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영훈 당시 육사 교장이 구금됐다. 강영훈 교장이 행진을 거부했다며 쿠데타 세력에게 일러바친 것이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전두환의 밀고로 육사 생도 행진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고, 선전 효과를 톡톡히 누린 박정희는 그때부터 전두환을 ‘특별하게’ 대우했다. 특별해진 전두환은 자신이 인정한 ‘특별한’ 세력으로 꾸려진 하나회의 힘을 빌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다. 2024년 다시 반복될 뻔한 역사 앞에서, ‘너는 특별하다’고 교육하는 사관학교의 존재 의미와 그 위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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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는 두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모두 군사쿠데타의 주범이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면되어 남은 생을 누렸다. 2024년 12·3 내란사태로 구속된 육사 출신 군인은 지금까지 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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