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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딜레마 -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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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두고 법조계도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달 13일 두나무 주최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컨퍼런스(D-CON) 2024'에서는 법학계와 실무진이 모여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는 신지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 신 교수는 국제기구 유니드로와(UNIDROIT)가 최근 발표한 '디지털 자산과 사법 원칙'의 한계를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법적 성격을 규정하는 이론적 논쟁보다 실무적 해결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니드로와 원칙은 가상자산 지배에 관한 원칙을 선언했지만, 이는 당연한 현상을 법률 용어로 풀어쓴 것에 불과합니다. 비밀키를 가진 사람이 가상자산을 지배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죠. 이런 선언적 규정이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강지성 광주지방법원 판사는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유니드로와 원칙은 배타적으로 지배 가능한 전자 기록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가상자산을 하나의 재산권 객체로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마치 민법에서 점유가 소유권을 추정하는 것처럼, 가상자산에서는 지배 개념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토론은 자연스럽게 가상자산의 강제집행 문제로 이어졌다. 고유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실적인 난점을 지적했다. "채무자가 비밀키 공개를 거부하면 강제집행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비밀키는 개인의 진술거부권과도 관련되는데, 이를 강제로 공개하게 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황성민 서울회생법원 판사는 우회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파산절차에서는 비밀키 공개 거부 시 면책 불허가 의견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의 경우, 채권자로서 파산을 신청하고 이런 방식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죠."

특히 뜨거운 관심을 모은 것은 가상자산 거래소 파산 시 고객 자산 처리 문제였다. 최근 델리오, 하루인베스트 등 가상자산 예치·운용 업체들의 파산 신청으로 이 문제는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김상중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 사례를 들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스위스는 2020년, 독일은 2023년에 법을 개정해 거래소 파산 시 고객의 환취권을 인정했습니다. 일본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죠. 우리도 이런 흐름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취권이란 파산한 기업이 보관 중인 타인 소유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토론자들은 한 가지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현행법 체계로는 가상자산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온체인(블록체인 상) 거래의 경우, 비밀키를 가진 사람이 협조를 거부하면 사실상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반면 오프체인(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상대적으로 해결이 쉽다는 의견이 나왔다. 신지혜 교수는 "거래소가 개입된 경우에는 사업자들이 절차에 협조적이기 때문에, 절차법만 정비되면 강제집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흥미로운 대안도 제시됐다. 강지성 판사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법원의 강제력 없이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미리 정해진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자산이 이전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레버리지 거래나 옵션 거래처럼, 특정 조건이 되면 자동으로 반대매매가 이뤄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한 2단계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법조계는 이 과정에서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뿐 아니라 구체적인 절차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지혜 교수는 특히 민법학계의 현실 감각 부족을 지적했다. "민법학계의 논의가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가상자산이 거래되는 현실이나 기술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낮은 수준입니다. 탁상공론이 되지 않으려면 업계 현실과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토론회는 우리나라 법조계가 가상자산이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마주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전통적인 물권과 채권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상자산의 특성, 기존 법체계로는 해결하기 힘든 강제집행의 문제, 거래소 파산 시 투자자 보호 문제 등 산적한 과제들이 드러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법조계가 보여준 현실적인 접근 방식이다. 법적 성격 규정이라는 이론적 논쟁에 매몰되기보다, 실제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스마트 계약을 활용한 강제집행 방안 제시나, 파산절차에서 면책 불허가를 활용한 우회적 해결책 등이 대표적이다.

토론 과정에서 흥미로운 법적 쟁점들도 여럿 제기됐다. 예를 들어 가상자산 거래에서 사기나 착오가 있었을 경우,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된다면 가상자산에 대한 권리는 자동으로 복귀하는지, 아니면 별도의 절차가 필요한지 등의 문제다. 이는 가상자산을 물권으로 볼 것인지, 채권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상 국경을 넘는 거래가 빈번한데, 국제적 차원의 법적 대응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또한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발전 속도를 법제도가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가사소송에서의 문제도 언급됐다. 이혼 시 재산분할 과정에서 배우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을 어떻게 파악하고 분할할 것인지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유료 추적 서비스를 활용해 공개키를 통해 자산을 추적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결국 가상자산을 둘러싼 법적 과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가상자산이 계속 등장할 것이고, 이에 따른 법적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법조계는 이론과 실무, 기술과 법의 균형을 맞추며 해답을 찾아가야 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죠.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한 패널이 던진 말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가상자산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법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날이 언제쯤 올지, 그 답을 찾는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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