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기축통화국으로서 물가·환율·금융 모두 고려한 통합정책 불가피"
"국민연금, 외환시장 영향 확대도 고려해 해외투자 전략 짜야"
이창용 한은 총재 |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월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놓쳤다는 일각의 '실기론' 지적에 대해 통화뿐 아니라 금융 안정까지 고려한 '통합정책'의 필요성을 들어 반박했다.
이 총재는 23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국제경제학회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 '통합적 정책체계(Integrated Policy Framework):한국 통화정책 적용'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지난 2년 6개월간 한은이 들어온 비판 중 하나는 한은이 물가안정 목표에만 주력하지 않고, 환율·가계부채·부동산가격 등 물가 외 변수까지 고려하면서 좌고우면하다가 금리 인상·인하기에 모두 조정 시기를 실기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2010년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와 학계에서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신흥시장국의 경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타겟팅(목표설정)을 보완한 '통합적 정책체계' 채택을 지지하는 견해가 늘고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주장이다.
그는 "특히 IMF는 2010년대 들어 통합적 정책체계를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외환시장개입(FX intervention), 자본이동관리정책(CFM)의 효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한국 통화정책에서 실제로 통합 정책이 적용된 사례로서 올해 8월 기준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금융통화위원회가 물가, 민간 소비 등 실물 부문에서 조성된 금리 인하 여건에도 불구,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융 불균형 확대를 부추길 우려가 커지자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를 우선 요구하고 효과를 기다리며 기준금리를 동결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기대가 커지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기에 앞서 이미 국내 시장금리가 먼저 상당폭 떨어졌고, 이에 따라 8월부터 가계부채와 집값이 뛰면서 금융 불균형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2022년 하반기 자금·신용 경색 상황,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 당시도 통합 정책 체계가 가동된 사례로 소개됐다.
이 총재는 "2002년 연준의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강해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올랐고, 하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단기 금융시장 불안이 촉발됐다"며 "한은은 물가와 금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의 지속적 인상으로 물가와 환율에 대응하는 동시에 대출 적격담보 대상 증권 확대, 비은행 금융기관 대상 한시적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당시 특정한 환율 수준을 목표로 하지 않고 환율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외환시장 개입과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계약 체결 등으로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했다"며 "통화정책과 외환시장 개입의 조합은 외환시장 발달 정도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경우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정책의 좋은 사례"라고 부연했다.
그는 "한은이 선진국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운용체계로 채택하고 있지만, 비(非)기축통화국의 제약 때문에 통화정책만으로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함께 달성하는 데 선진국에 비해 한계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한은은 물가 안정을 주요 정책 목표로 추구하는 동시에 금융 안정과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를 위해 통합적 정책 체계 아래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울러 국민연금에 대해 "꾸준히 해외 투자를 확대하면서 2023년 기준 거주자 해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9%까지 늘어 외환시장 영향력이 커졌다"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는 외환 순매입 확대로 원화 절하 압력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지만, 앞으로 고령화 등에 따른 기금 감소기가 도래하면 해외자산 매각에 따라 반대로 원화 절상 요인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전략을 짤 때 외환시장 영향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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