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렸던 그날 12월 10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겠죠. 가정은 가정일 뿐. 매시간 매분 쏟아지는 기사에 정신 못 차리고 노벨상 시상식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사실 ‘노벨상’ 단어마저 사치스럽습니다.
코스닥 종목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A는 “계엄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2억원이 날아갔다”며 분노하고 자영업자 B는 “그러잖아도 장사가 안돼서 죽을 지경인데 계엄으로 경제가 더 엉망이 되니 이제 정말 폐업해야 하나 싶다”며 한숨을 쉽니다. ‘기득권층은 다 똑같다’며 정치에 냉소적이던 C는 “어떻게 하나같이 다 ‘점’과 관련이 있는 건지, 계엄의 비선으로 의심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집이 점집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그래도 이재명보다 낫지 않을까 하며 윤석열을 찍은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었다”며 씩씩대더군요. 그뿐인가요. “하루 종일 뉴스만 본다.” “밤에 잠을 잘 못 자겠다”며 계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가 한둘이 아닙니다.
# 우리가 그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소년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년이 왔다’가 아니라 ‘소년이 온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소년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그러니 우리는 소년과 그날을 잊지 않을 테죠. 이제 다시 한번 온몸에 각인된 만큼 더 잊지 못할 겁니다.
특히 ‘서울의 봄’과 ‘소년이 온다’로 계엄을 간접 경험한 1030이 소년과 그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의 단초를 봅니다. 탄핵소추안 가결의 순간 여의도에 있었다는 D는 “H.O.T. 캔디를 리메이크한 NCT 덕분에 캔디로 대동단결했다. 아미인 나도 소심하게 BTS 응원봉을 들었다. 쑥스러워 애들처럼 방방 뛰진 못했지만 그래도 흥이 났다. 정말 멋진 1020이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실제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를 부르며 역사의 순간을 함께한 MZ들은 신선한 집회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시민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시 송년호를 만들었습니다. 2024년은 비록 12월 3일 밤 10시 28분으로 규정지어지겠지만, 그래도 2025년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일지요.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0호 (2024.12.25~2024.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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