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는 물론 의회까지 장악한 ‘슈퍼 트럼프’다. 한국만 소외될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한 모임에서 이런 불안감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답은 이랬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 역량이 매우 크다.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예를 들면 내년 2월 현대차 조지아주 공장 개소식도 중요한 민관 아웃리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대통령 탄핵소추로 정부가 공백 상태가 되면서 외교·통상도 힘이 빠졌다. 결국 믿을 곳은 민간 기업들뿐이다.
트럼프는 기업인 출신이다. 공무원을 믿지 않고 사적 인연이나 기업인을 중시한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기업이 강한 나라다.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도 기업인들은 열심히 뛰고 있다.
지난주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트럼프 주니어와의 인연으로 마러라고에 묵었다.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연 한화 회장, 류진 풍산 회장 등도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다.
물론 한국만 이런 것은 아니다. 기업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총동원되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은 대통령인 트럼프가 기업인이고, 머스크라는 혁신 기업가를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일본 경제를 대표해 트럼프를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국내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한 와중에 국회에선 ‘기업 활동 방해 법안’들이 속속 통과됐다.
최근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국회증언법’은 기업인이 해외 출장이나 와병 중에도 원격으로라도 국회 출석을 해야 하며, 영업기밀이나 개인정보도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반기업, 반시장 취지가 농후하다. 중국 등 경쟁국에 기업정보를 노출시킬 위험도 크다. 창업이나 기업의 유입을 막고, 삼성·현대차·SK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 것이다. 투자자들은 반시장적인 규제가 남발되는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한국 경제를 휘청이게 할 악법이다.
이재용 삼성 회장은 지난 2016년 트럼프의 첫 대통령 취임식 때 초청받았다. 그러나 ‘국정농단’ 수사 대상이라는 이유로 출국도 못했다. 한국 최대 기업 수장이 단 사나흘 방미하는 일정조차 허용 않는 강압식 특검 수사였다. 어떤 사람이 수사했을까. 박영수 특별검사와 윤석열 수사팀장이었다. 전자는 ‘대장동 50억 클럽’의 거액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됐고, 후자는 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소추를 받는 대통령이 됐다.
겉으로 정의를 외치면서 뒤에선 잡범보다 부패했거나 몰역사적 생각에 취한 사람들. 한국의 공공 영역은 이런 사람들로 무너져내리고 있다.
불안함은 트럼프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공공 영역을 좌우하고 기업을 억누르는 데서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의 핵심 경쟁력은 글로벌 기업이다. 최근 트럼프 측과 접촉한 기업 관계자가 전해주는 정보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했다기보다 제대로 된 카운터파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느낌입니다. 불안은 하지만 한국에 대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요.”
모든 기업인이 모범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백이고 국회에서 한국을 자해하는 법안을 만드는 그 시간에도 밖에서 기업인들은 뛰고 있다.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은 여전한 것 같다. 기업 수준은 훨씬 올랐는데, 정치는 계엄 선포한 대통령과 실력 없는 국회의원들로 더 낮아졌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0호 (2024.12.25~2024.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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