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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도 같은 글을 쓴 것 같다. 메모장을 펼쳐놓고, 시장의 신음 소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제일 피곤한 게 뭔지 아세요? 대기업 출신 멘토들이에요. 자기들 경험만 들이밀면서 조언한다고 하는데, 우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예요."
그의 말이 날카롭게 꽂혔다. 마침 얼마 전 한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대형 건설사에서 상무로 일하다 명예퇴직한 분이었다. 그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물었다. "스타트업이나 벤 자문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투에서 과거의 자부심이 묻어났지만, 시장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시장은 오직 생존할 수 있는 자만을 받아들인다.
최근 설문 조사를 보니, 투자사들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여유 자금'이라 부르는 투자금은 넘쳐나는데, 제대로 된 투자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블록체인,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화두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기준금리마저 높은 상황에서 과감한 베팅을 하기도 어렵다.
식품 수입업체들의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연초 1290원이던 달러 환율이 현재는 1450원을 돌파했다. 전국에 수만 개라는 수입 업체들이 이 충격을 그대로 감내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수 경기마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이들의 수익은 절벽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통 해마다 100만 개의 가게가 문을 열고, 90만 개가 문을 닫았다. 그런데 올해는 이 균형이 무너졌다. 110만 개 이상이 폐업하고, 90만 개 정도만이 새로 시작한다는 예측이다. 간단히 따져도 20만 명의 자영업자가 실직자가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창업자들이 '갑질 멘토'들을 경계한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시장'은 파워포인트 속 시장이고, '전략'은 회의실 안에서만 통용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세금계산서 하나 끊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작은 회사의 현금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는 한 교수가 스타트업 컨퍼런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초기 기업은 브랜드 전략에 집중해야 합니다." 청중석에 앉아있던 창업자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 이번 달 임대료를 어떻게 낼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브랜드 전략은 사치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요즘에는 대기업들의 인력 감축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그들이 보내오는 상담 요청을 듣다 보면,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얼마나 따뜻한 온실에서 살아왔는가. 정시에 들어오는 월급, 엑셀과 워드로 채워지는 일상이 평생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장은 그 어떤 안락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은 이론과 다르다. 시장은 생존이다. 직원 다섯 명의 월급을 제때 주는 것, 거래처의 물건값을 약속한 날짜에 지급하는 것, 은행 대출 이자를 연체 없이 내는 것. 이것이 진짜 시장이다. 대기업의 임원들은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월급은 당연히 통장에 들어오는 것이었고, 회사의 돈은 언제나 충분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독립에 대한 로망이다. 많은 이들이 퇴사 후의 창업을 꿈꾼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사업이 얼마나 험난한 세계인지를. 연봉 8천에 점심시간을 보장받는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이제는 그런 삶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시장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신호를 무시했을 뿐이다. 환율은 급등했고, 수만 명의 자영업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며, 투자자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이 모든 징후가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깨어나라"고, "준비하라"고.
나는 선배에게 이렇게 답했다. "영업이 쉽지 않더라도 급여를 받는 직장을 찾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개운치 않은 한숨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우리는 모두 직감하고 있다. 이 추위가 쉽사리 물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거리를 보니 찬바람이 불고 있다. 마치 시장이 보내는 경고 신호처럼 차갑고 매섭게 불어온다. 하지만 이 추위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보고서가 아닌 현장에서, 이론이 아닌 실전에서, 전략이 아닌 생존에서 답을 찾고 있다. 진정한 시장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다가올 새날의 주역이 될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이 겨울을 슬기롭게 버텨내야 한다. 온실 속 난초가 아닌, 바위틈의 들꽃처럼.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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