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 포항 죽도시장 가 보니
방문객 많아도 '풍요 속 빈곤'에 위기감 확산
해마다 시장 방문객·상인 줄어 더 흐린 앞날
전국 지자체, 전통시장 살리기 대책 마련 분주
이달 17일 낮 대구 중구 서문시장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대구=김재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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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낮 대구 중구 서문시장은 평일이지만 북적였다. 한강 이남 최대 전통시장이라는 수식어가 무색지 않게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차량이 100m가량 늘어서기도 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정작 상인들은 '속 빈 강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건어물상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손님이 많아 보여도 대부분이 허수"라며 "원재룟값 인상 탓에 판매가도 올라 단골손님들의 원성이 높다"고 했다. 생선을 팔던 한 상인은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분수령 아니겠느냐"고 거들었다.
17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 내 칼국수 매대 옆을 방문객들이 지나치고 있다. 대구=김재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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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은 2016년 대형 화재로 4지구가 통째로 사라진 고통에서도 아직 완전히 탈출하지 못한 상태다. 일부 상인들은 대체 상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한복점을 운영하는 이모(65)씨는 "4지구 재건축도 기약이 없어 언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나마 서문시장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철강업으로 먹고사는 경북 포항시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국내 1위 철강사 포스코가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포항제철소 내 공장 두 곳을 폐쇄했고, 2위 현대제철도 포항2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역 경기는 얼어붙었다. 설상가상 비상계엄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관광객 발길마저 뚝 끊겼다.
동해안 최대 규모 전통시장인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 내 대게 거리가 주말이었던 지난 15일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포항=김정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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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동해안 전통시장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 상인들은 물건을 한가득 쌓아두고 손님을 기다렸지만 시장은 종일 한산했다. 겨울철 특산물인 대게와 과메기 판매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예년 이맘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도소매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우미희(56)씨는 "식당이 잘돼야 우리 물건도 잘 팔리는데 공장이 문을 닫아 연말 모임과 단체 회식도 사라졌다"고 했다. 대게를 파는 노재웅(42)씨도 "요즘에는 가격 문의 전화조차 없다"며 "철강 경기침체에 계엄 여파까지 겹쳐 겨울 특수는 완전히 실종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통시장 방문객·상인 해마다 감소
전국 전통시장 평균 방문객 및 상인 수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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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말이 유난히 혹독하지만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은 더 큰 난관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 일평균 방문객은 2019년 5,413명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4,723명으로 급감했고, 2022년에는 4,536명으로 더 줄었다. 전통시장 상인 수 역시 2019년 34만2,031명에서 2022년 31만6,315명으로 감소했다.
부산 해운대구 주민들이 애용했던 반여시장만 해도 점포 80여 곳 중 30여 곳이 문을 닫은 상태다. 오래된 상가라 권리금도 없지만 1년이 넘도록 장사한다고 새로 들어오는 상인을 찾기 힘들다. 60대 상인은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생존을 걱정할 지경"이라고 씁쓸히 말했다.
전망은 여전히 '흐림'... 지자체 활성화 '사활'
전통시장 연간 BSI 체감 및 전망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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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들이 힘든 겨울을 넘긴다고 해도 전망은 어둡다. 지난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11월 전통시장 전망 경기실사지수(BSI)는 82.1, 체감 BSI는 63.2였다. 100 이하면 경기 악화를 뜻한다. 이달은 전망 BSI가 77.5로 11월보다 낮아졌는데, 최근 비상계엄 사태 등을 감안하면 이달 말 나오는 체감 BSI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11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전통시장 경기동향 조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전통시장 살리기에 사활을 걸었다. 부산시는 내년부터 1,800억 원 규모 '소상공인·자영업자 비타민 플러스 자금'을 지원하고, 올해 전통시장에 97억 원을 투입한 대구시의 경우 내년에는 인기 명소로 자리 잡은 야시장을 활용한 시장 살리기에 나선다. 포항시도 전통시장 장보기와 연말연시 모임을 장려하고, 다음 달 포항사랑상품권 10% 할인 행사와 함께 발행액을 대거 늘린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역 경제 위축과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겹쳐 전통시장 상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다양한 부대 행사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민생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포항=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부산= 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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