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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내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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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달 돋는 개여울의 빈 들 속에서



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 하지.





우리가 굼벵이로 생겨났으면!



비 오는 저녁 캄캄한 영 기슭의



미욱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





만일에 그대가 바다 난 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다면,



둘이 안고 구르며 떨어나지지.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이면



그대의 가슴속을 밤 도와 태워



둘이 함께 재 되어 스러지지.



―김소월의 시 ‘개여울의 노래’, 시집 ‘진달래꽃’(1925)





한겨레

한겨레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GPT)’에게 김소월의 시 ‘개여울의 노래’를 적고 “이러한 ‘사랑의 시’를 ‘수묵화’로 생성해달라”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도출된 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소월은 1902년에 태어나 일본 도쿄에서 창간된 ‘창조’(創造)에 시를 발표(1920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펴내고 1934년 서른둘의 나이로 작고했다. 내년 100주년을 맞는, 그가 스물세살에 펴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에는 127편의 시가 16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그중 ‘개여울의 노래’는 열세번째 부의 서시이다.



소월은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에 입학한다.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앞둔 소월은 간토(관동)대지진(1923)이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대학 중퇴로 이어졌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완강한 만류 때문이었다.



소월 시에는 강가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자주 나온다. 그들은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고 그리워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 우리 부부는 헤어진 적이 있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일은 절대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자갈 깔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날따라 바람이 매서웠다. 우는 너는 나와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그 후로 1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때 네가 나를 포기했다면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소월은 바란다. “우리가 굼벵이로 생겨났으면!” 하고. 너와 함께라면 미물(微物)이 돼 어리석고 미련한 꿈을 꾸어도 좋다고 한다. 사랑은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것이 허무맹랑한 꿈이더라도 사람을 살게 한다.



시는 과거와 화해하기 위해 지난 시간을 불러온다. 흘러간 시간은 구멍 나 있고 안개 속에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인은 과거와 마주하며 마음을 쏟는다.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시작이자 꼬리이므로. 미래는 과거의 허물이자 머리이므로. 긍정과 부정은 맞수이고 짝이다. 부정 없는 긍정은 공허하다. 부정은 질문하게 한다. 질문은 긍정의 시작이며 사랑의 방식이다.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기 부정의 시기를 겪는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부정은 부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다. 시민들의 저항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간 국회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일련의 과정은 여섯 시간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국민을 배신하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광화문에서 용산까지 행진하며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싸고 구호를 외쳤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민중에게서 나온다. 소월이 바라던 세상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세상, 맘껏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소월은 말한다. “만일 그대가 바다 난 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다면” 하고. 절벽을 구르는 너를 안고 바닷속으로 가라앉겠다고 한다.



몇년 전 나는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암막을 두른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너는 가라앉는 나를 꼭 붙들고 함께 침잠했다. 어둠 속에 숨었다. 그때 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바닥에 이르렀던 걸까. 이러다간 둘 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자리를 구했다. 밥을 먹었다.



소월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같다고 했다. 일본 유학 생활이 물거품이 되고 나서 그의 삶은 좀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는 전통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싶었으나 끝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실의에 잠겨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소월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처음 도착한 마을이 평안북도 영변읍이었다. 그곳을 여행하며 쓴 시가 ‘진달래꽃’이다.



그는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머물다 처가댁이 있는 구성(龜城)으로 살림을 차려 나갔다. 그곳에서 동아일보 구성지국을 운영하지만, 사업은 실패하고 절망에 휩싸인다.



열심히 움직이며 부지런히 집을 짓는 개미를 보며 “집 짓는 저 개미/ 나도 살려 하노라, 그와 같이/ 사는 날 그날까지/ 삶에 즐거워서,”(시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고 노래한 소월에게 아편을 입에 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 아니었을까.



글쟁이는 글이 앞선다. 자기는 제자리인데 말이 멀리 가 있다. 생활이 두렵고 세상이 무서운 걸까. 알 수 없는 거겠지. 그 무엇도. 전망 없음은 삶을 망가뜨린다. 한 사람을 자포자기하게 한다. 오지 않은 것에 지레 겁먹고 희망을 내던져 버리는 사람. 그러나 둘이 함께 재가 돼 스러진다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월이 뒷산에 홀로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달빛이 비치고 바람이 분다.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아무도 없는 들판 속에서 나를 감싸겠지. 사랑은 강물처럼 지독하게 흐른다.





*이제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을 들을 차례. 작가들이 숨어 애송하는 연애시의 내막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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