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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데스크 칼럼] 정치가 경제 좀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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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며칠 전 난감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회사가 주최하는 내년 1월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었던 일본인 연사가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한국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이번 방문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을 위험하게 인지하는 외국인이 늘면서 해외 바이어 미팅이 잇따라 취소되는 등 글로벌 사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비상계엄의 불똥이 경제 전반으로 튀고 있는 것이다.

경제·외교 부처 수장은 이례적으로 한자리에서 외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간담회에서 “모든 역량을 결집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외국인 여행객들의 한국 방문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의 모국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2·3 비상계엄’은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경제와 민생을 저버리는 행위다. 비상계엄 선포 155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돼 파국을 막을 수 있었지만 시민들은 극심한 공포와 절망을 느꼈다. 문제는 ‘계엄 청구서’가 골목상권은 물론 산업현장 곳곳으로 날아들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들은 대목인 연말에도 한숨만 쉬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4일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드린다”며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안은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를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다.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치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천장을 뚫었다.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50원대를 돌파했다. 환율 상단을 1500원선까지 열어놔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외 투자심리는 극도로 위축됐다.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곳곳에서 나온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잠재성장률이 앞으로 15~20년 뒤 0%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다 한국 경제가 망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탄핵 뒷수습에 국론은 분열되고 국력은 낭비되고 있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국제 정세와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데 이에 맞설 대한민국은 ‘리더십 공백’ 상태다.

정치가 경제를 좀먹고 있는데도 여야는 주판알을 튕기며 조기 대선만을 바라보고 있다. ‘87년 체제’는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으로 구축된 현행 헌법 체제다. 이 체제에서 선출된 5년 단임 대통령 8명 중 3명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와 여야의 극단적 정치 대립으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여론도 개헌 필요성에 힘을 싣고 있다. 역대 정부 대부분 임기 중 개헌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대론 안 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 개헌의 적기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제7공화국으로의 체제 전환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창환 금융부장(ch2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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