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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기자수첩] 오너 일가와 직원들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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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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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바닥을 치니 오너가(家)가 지분 확보하기엔 좋다.”

최근 유통업계 연말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나온 업계 반응 중 인상 깊었던 얘기다.

현재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태다. 본업인 유통업이 부진한 데다 신사업 투자에서도 실패를 거듭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대세다. 두 그룹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칼바람 인사를 거듭하고 있다. 부진한 실적을 극복하기 위한 신상필벌을 강조한다.

다만 살벌한 임직원 인사와는 달리 오너2·3세 승계 작업도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미래전략실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신세계도 작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승진에 이어 올해 정유경 부회장도 9년 만에 (주)신세계 회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신유열 롯데 부사장의 경우 아직 한국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한 적이 없어 그룹 위기 속에서 과연 무엇을 했냐는 반응도 나온다. 신사업을 진두지휘하겠다는 명목의 승진인데 현재 롯데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사업을 포함한 여러 계열사의 매각을 검토 중이다.

이런 상황이라 롯데 내부에서는 그룹 위기 이슈를 덮기 위해 신 부사장을 승진시킨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실적이 바닥을 쳐 주가가 떨어지면 오너 일가에겐 오히려 지분을 확보할 기회이니 승계 작업을 미룰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 부사장은 일본 롯데 지주사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로 선임된 올해 6월부터 롯데지주 지분을 장내에서 매수하고 있다.

이번이 신 부사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할 기회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그가 실패한다고 해도 별다른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이라 의미 없는 말이기도 하다. 오너 일가의 오판(誤判)은 사실상 심판받지 않는 탓이다.

일례로 신세계가 손을 댔다 실패를 거둔 삐에로쇼핑, 제주소주 등은 모두 정용진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이뤄졌다.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동안 본업인 이마트는 쿠팡에 밀리는 등 경쟁에서 뒤처지는 신세가 됐다.

한국 유통 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한 것은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잘못된 투자 결정을 반복한 탓이다.

이는 결국 그룹 전체를 이끄는 경영력의 문제다. 통상적인 위기 상황이라면 책임자가 처벌을 받지만, 오너 일가만큼은 책임을 면제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실적이 악화한 상황에서 오너 2·3세의 승진은 일반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저해하는 경향도 있다. 임원들은 칼바람 인사에 자리 유지에만 급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애먼 직원들은 계열사마다 희망퇴직 바람에 고용 유지조차 어렵다.

만약 이번 승진이 기업에서 내세우는 것처럼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 강화 측면이라면 오너 2·3세에게 실적 개선의 책임이 더 명확히 부여되고, 이들이 위기 속에서 그룹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효정 기자(saudad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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