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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고흥 밤하늘, 너와 함께 보고 싶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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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의 야경. 왼쪽 언덕 위에 누리호 발사대가 보이고, 밤하늘에 은하수가 반짝인다. 나로우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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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야경이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노래처럼 조명 불빛이 어른거리는 밤 풍경은 여행자를 설레게 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밤하늘 여행의 메카는 전남 고흥이다. 소록대교 야경이 바라보이는 녹동항에서는 드론쇼와 바다불꽃축제가 펼쳐진다. 국내 최초의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와 우주천문과학관에서 별빛을 바라보며 검고 푸른 우주의 낯선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 별빛 따라 우주과학 여행

한반도의 서남부에 있는 고흥은 고흥반도와 230개의 섬들이 펼쳐져 있다. 고흥반도와 내나로도∼외나로도를 잇는 나로대교는 우주로 가는 다리다. 구불구불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도해의 그림 같은 섬과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사라지곤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맹활약했던 흥양수군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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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와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나로우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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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끝나고 섬도 끝나갈 무렵, 대한민국 첫 번째이자 세계 13번째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가 나타났다. 2013년 나로호, 2022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역사적 현장이다. 먼저 우주과학관이 손님을 맞는다. 로켓 발사체 엔진과 인공위성, 무중력 우주 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에선 연구원 박사들이 관람객들에게 우주과학에 대해 해설해 준다.

나로우주센터의 부지는 550만 m². 축구장 700개의 크기다. 해안 절벽을 따라 발사대 시스템, 발사체 추적과 통제센터, 발사체 조립동 등 최첨단 시설이 숨어 있다. 우주과학관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보안 시설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전남관광재단과 코레일관광개발이 협력하는 ‘고흥, 별빛 따라 떠나는 우주과학 여행 열차’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발사 통제동, 발사대 시스템, 발사체 보관동 등 보안 구역까지 견학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먼저 우주센터 발사 통제동에서 송병철 책임연구원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우주탐사 여정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나로호, 누리호 발사 당시 카운트다운을 하고, 1, 2단 로켓과 페어링 분리, 인공위성 궤도 진입을 추적하던 수많은 과학자들이 가슴 졸이고, 안타까워하고, 환호하고, 박수 치던 바로 그 장소다.

다음 찾아간 곳은 나로호 발사대. 발사대 옆에는 초록색 엄빌리컬 타워가 우뚝 서 있고, 붉은색 하얀색 페인트칠이 돼 있는 피뢰침이 사방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발사체는 이곳에서 기립장치를 이용해 똑바로 세워진 후 ‘탯줄(Umbilical·엄빌리컬)’ 같은 수많은 케이블로 타워와 연결돼 각종 고압가스, 연료, 산화제를 주입받는다. 그래서 발사체는 흔히 ‘깡통’, 엄빌리컬 타워는 ‘주유소’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발사대 아래에는 지하 3층 규모의 발사동 건물이 숨어 있다. 연면적 8900m²(약 2700평)에 각종 설비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방에 구비돼 있는 곳이다. 송 책임연구원은 “처음에 내려가는 연구원들은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시스템의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2009년 세계 13번째 우주센터로 지어진 나로우주센터의 후보지는 경남, 경북, 전남, 제주 등 11개 지역이었다고 한다. 송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로켓 발사 각도와 궤도 추적의 용이성,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결국은 사람이 가장 적은 외딴섬인 외나로도로 결정됐다. 초기엔 도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수많은 건설자재와 로켓 장비를 대부분 바다를 통해 배로 날라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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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우주천문과학관의 별빛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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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의 우주과학여행은 우주천문과학관으로 이어진다. 국내 최대급 800mm 주망원경을 비롯해 6개의 보조망원경을 갖춘 천문대다. 망원경을 통해 겨울철 별자리뿐 아니라 달과 목성, 토성의 고리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60석 규모의 천체투영실에서는 지름 10m의 원형 돔 공간에서 약 30분간 천문 영상을 보여주며 별자리를 해설해 준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이 춤을 추며 날아올랐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의 돔 상영관과 비슷한 분위기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는 것도 좋지만 휴대전화 천체사진 촬영 모드를 이용해 밤하늘을 직접 찍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별 사진을 찍을 때는 천체망원경과 돔 건물을 배경으로 넣으면 더욱 실감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장어 요리와 전복, 문어 등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고흥 녹동항도 야경 명소다. 녹동항 바다정원 아치형 다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밤 소록대교 야경을 배경으로 1500대의 드론을 이용한 공연이 펼쳐진다.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총 38회에 걸쳐 펼쳐진 드론쇼를 보기 위해 24만여 명이 찾아왔다. 바다정원 옆 미디어돔에는 해저와 우주를 탐사하는 돔 상영관과 가상현실(VR) 체험관이 있는데, 외벽에 펼쳐지는 미디어아트도 볼만하다.

● 겨울 고흥의 맛 참꼬막, 굴, 유자, 커피

“참꼬막을 탁 까면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눈물을 흘릴 것처럼 보여요.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살짝 데쳐서 먹는 참꼬막 맛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고흥 남양면 우도마을로 가는 길에 문화관광해설사는 겨울의 별미인 참꼬막을 ‘눈물이 글썽글썽’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살짝 데쳐 물기가 살아 있어 조개의 반짝이는 검은 속살을 일컫는 현지인의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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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우도 앞바다 레인보우교 위에서 내려다본 갈대와 별빛처럼 반짝이는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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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1.3km 떨어진 섬인 우도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고, 바닷길이 열려야 드나들 수 있는 섬이었다. 그런데 올해 4월 국내 최장 연륙 인도교인 ‘우도 레인보우교’가 생겼다. 무지갯빛으로 칠해진 다리 위를 걸으면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푸른 바다 위로 윤슬이 별처럼 부서진다. 물이 빠지면 다리 아래쪽 노둣길을 걷는다. 뻘 속의 망둥이와 게, 꼬막 등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고흥의 겨울 별미는 꼬막뿐이 아니다. 추운 겨울 감기 예방에 좋은 따뜻하고 상큼한 유자차 한잔이 나를 위로해 준다. 연평균 기온이 13도 이상이 되는 곳에서만 자라는 유자는 전남 고흥, 완도, 진도, 경남 거제, 통영 등 남해안 일대에서 재배된다. 그중에서도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유자의 고장이다.

고흥의 유자 농장 중에는 유자를 수확하고, 유자청과 유자차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두원면 고유한관광농원의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니 레몬꽃 향기만큼 상큼한 유자향이 온몸을 감쌌다. 나무마다 지름 4∼8cm의 둥그런 공 모양의 밝은 노랑 빛깔 유자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농장 한쪽의 에덴식품 공장에서는 유자청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유자를 껍질째 얇게 썰고, 설탕을 넣어 버무려 빈 병에 담는 과정이다. 소정의 비용을 낸 체험자들은 이 병을 집으로 가져가 1주일 정도 숙성을 거쳐 유자차로 마실 수 있다.

고흥에는 국내 최초의 커피 재배 하우스인 ‘산티아고 커피농장’도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쿠바에서 가져온 ‘크리스털 마운틴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커피나무에 재스민 향이 나는 눈송이처럼 하얀 꽃이 피고, 초록색 커피체리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산티아고 커피농장을 운영하는 김철웅 바리스타의 대표 커피 상품은 ‘유자와인커피’다. 고흥의 특산물인 유자청과 커피체리를 함께 발효시켜 만든다. 유자의 향이 침투된 커피 생두를 볶아서 더치커피 방식으로 내리고, 다시 발효시켜 와인처럼 만든다. 유자 막걸리처럼 발효된 향이 확 밀려오는 첫맛에 이어 구수하고 진한 커피 향이 이어지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커피다. 이곳에서는 ‘커피 드립백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드립백 봉투에 산티아고 농장 커피를 10g씩 담고 밀봉한 후 집에 가져가는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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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의 ‘길례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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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볼 만한 곳=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는 화가 천경자(1924∼2015)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고흥 출신인 천경자 화가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얀 모자를 쓴 ‘길례언니’를 비롯해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들의 그림이 이어진다. 천 화백의 원래 이름은 옥자였는데, 일본 유학 시절부터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썼다. ‘거울을 보는 여자’라는 이름처럼 그는 평생을 거울을 보듯이 자화상을 그렸다. 타이티, 베트남, 인도, 프랑스 등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그린 드로잉 작품에서도 화가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글·사진 고흥=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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