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19일 임시예산안 표결을 앞두고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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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 현실화 예상일을 하루 남짓 앞두고 공화당 하원 지도부가 마련한 임시예산안이 부결됐다. 셧다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가운데, 기존 합의안에 퇴짜를 놓고 새 안을 만들게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취임 전부터 타격을 입게 됐다.
미국 하원은 19일 밤(현지시각) 임시예산 법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 174 대 반대 235표로 부결됐다. 민주당은 거의 모두(197명 반대, 2명 찬성)가 반대했다. 공화당에서도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지도부가 마련한 법안에 38명이 반대(찬성 172명)했다.
임시예산안은 연방정부 지출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내용과 함께 재난 구호 예산 1천억달러(약 145조원)와 농민 보조금 100억달러를 포함하고 있다. 존슨 의장 등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최근 민주당 쪽과 이런 내용에 합의했다.
하지만 지출 규모가 아니라 연방정부 부채 상한액 31조4천억달러(약 4경 5527조원)의 적용을 계속 유예할지가 갑자기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지난해 6월 예산안에 합의하며 내년 1월1일까지는 부채 한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18일 갑자기 내년 1월20일에 취임하는 자신의 임기를 염두에 두고 새 임시예산 법안에 부채 한도 폐지를 넣으라고 요구하며 판을 흔든 것이다. 그는 “부채 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승인해서는 안 된다”며 공화당 의원들에게 기존 안의 부결을 요구했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내 행정부가 아니라 이 행정부(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부채 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임기 때 야당이 되는 민주당과 이 문제로 씨름하기가 싫으니까 당장 부채 한도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다. 임시예산안이 가결되지 못하면 곧 셧다운이 현실화한다는 점을 이용해 벼랑 끝 전술을 편 것이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경영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존 합의안 찬성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낙선 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식의 위협을 가했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불리는 존슨 의장은 압박에 굴복해 부채 한도 적용을 2년간 더 유예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트럼프는 이에 “존슨 의장과 하원이 매우 좋은 합의를 했다”며 하원에 가결을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쪽은 트럼프가 부자들을 위한 수조달러 규모의 감세 공약 실행을 위해 연방정부 부채를 크게 늘리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의 위협에 굴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결국 트럼프는 자신이 지지한 법안이 공화당 의원들의 ‘반란표’가 더해져 부결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취임하지도 않은 대통령이 양당의 합의안을 기세 좋게 날려버렸지만 하루 만에 되치기를 당한 셈이다. 연방정부 셧다운이 현실화하면 트럼프를 상대로 한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부채 한도 철폐나 적용 유예 주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빚만 잔뜩 늘려놨다며 부채 증가를 비난해온 그의 기존 입장과도 상충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나 유권자들은 다수가 연방정부의 방만한 재정 집행이 심각한 문제라며 지출 축소와 부채 한도 증액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트럼프의 뜻을 거스르며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들도 이런 취지를 밝히고 있다. 칩 로이 의원은 “책임 있는 재정을 주장해온 당(공화당)이 정말 역겹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에 소셜미디어에 “야심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로이를 공화당 의원 후보 경선에서 떨어트릴 사람이 필요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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