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36일 만인 지난 14일 경기도 군포시 원광대 산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강태완(몽골명 타이왕)씨의 빈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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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이지?”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밥을 짓고 있던 엄마를 창밖에서 내려다보며 한 중년 남자가 조롱했다. 방에 있던 태완이 뛰어나가자 남자가 도망치며 소리쳤다.
“조선족! 조선족!”
다음날 집 앞에 쌓여 있던 폐지에서 불이 붙었다. 태완과 엄마는 남자의 소행으로 짐작했으나 미등록 신분이 드러날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가 불을 껐지만 태완이 받은 충격은 진화되지 않았다. 미등록 이주민인 엄마와 체류자격 없는 자신, 중국동포들까지 한꺼번에 ‘태워죽이고 싶은 경멸의 대상’이 된 그날 사건은 당시 십대 청소년이던 강태완(몽골명 타이왕·32·한겨레 연재 ‘호준과 호이준 사이에서’ 주인공)에게 겹겹의 불자국을 남겼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만큼 기만적인 말도 없다. ‘서로 다른 문화와 민족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을 추구한다’는 이 말을 ‘차이를 인정하지도 공존을 추구하지도 않는’ 정부가 앞장서 유통해왔다는 사실부터 역설적이다. 이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모든 외국인이 아니다. 다문화 가정은 한국인이 가난한 나라의 배우자와 꾸린 가정에만 붙는 딱지가 됐다.
인종관계·국제이주·불평등 연구자인 손인서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다문화주의적 정책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대상 교육프로그램은 사회통합보다는 “동화교육에 가깝”다. 차별을 용인하고 편견을 가르치는 교재들도 ‘문화 차이’를 내세워 통용돼왔다. “다문화 사회라는 알맹이 없는 수사 아래에서 정부는 저개발국 출신 이주민을 착취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그는 이주민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달랜다.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염려와 다르게 국내 이민법은 이미 매우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손인서 지음, 돌베개, 1만8000원 |
그는 허구적 조어에 가까운 다문화 사회 대신 ‘다민족 사회’의 틀로 국내 이주민들이 처한 현실을 해부한다. “출신지와 민족, 혹은 인종이 다른 여러 집단이 함께 살아가는” 다민족 사회는 “반드시 다수와 소수, 내국인과 이주민, 권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구성”된다. “인종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편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편견과 인종주의, 차별은 한 묶음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구분 짓는 ‘인종화’는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기획’의 결과물이다. 법·제도 등을 통해 세심하게 쌓은 장벽들이 이주민을 ‘인종’으로 만든다. ‘인종기획’의 의도는 체류자격 정책에 노골적으로 투영돼 있다.
한국은 내국인의 배우자와 한국계 재외동포에게만 정착을 허용한다. 그들을 제외한 외국인 대상의 이민정책이란 실은 ‘인력정책’이다. 노동력 중에서도 단순기능인력들(45만명 고용허가제 노동자)을 겨냥한다. 그들은 최장 4년 10개월(5년 넘기면 영주권 신청 자격 부여해야)까지 머무를 수 있다. 가족 동반 입국도 허락되지 않는다. ‘필요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그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할 가능성은 정교하게 차단한다. 6살에 엄마를 따라 입국한 뒤 26년을 ‘군포 청년’으로 살아온 태완은 체류자격이 없어 ‘인종화’됐다. 유령처럼 살며 미래를 그려볼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다. 법무부 지시대로 자진출국과 재입국 을 거친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구소멸지역’ 김제에 취업 했다. 한국인이 떠난 지역에서 ‘인구소멸의 방패’가 됐을 때 주어지는 ‘지역특화형 거주비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태완의 궁극적 소망은 귀화를 통해 ‘한국 시민’이 되는 것이었다. ‘귀화를 하려면 영주권부터’(영주권 전치주의) 따야 했다. 소멸지역에서 5년을 거주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이 생기지만 태완에겐 아득한 일이었다. 연봉이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2배(2023년 GNI 4405만원×2=8810만원) 이상인 외국인만 ‘일반 영주’를 신청할 수 있었다. ‘국내 생산 현장을 지탱하는 인종들’ 앞에 놓은 거대한 바리케이드였다. 고소득 외국인들(3~7만명)에게만 열리는 자물쇠를 채우며 대한민국은 누구를 거부하는지 투명한 속을 드러냈다. 태완은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꿈이었던 ‘평범한 삶’을 얻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까닭도 있었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따르며 거주비자 단계까지 간 태완은 그를 막아선 바리케이드 앞에 이르기도 전에 소멸했다.
지난 16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연화장’에서 화장되고 있는 강태완씨를 어머니(오른쪽)와 누나가 울며 지켜보고 있다. |
저자는 ‘한국의 인종기획’에 갇힌 다양한 ‘태완들’을 조명한다. 국내에서 태어나 외국으로 추방된 혼혈인, 병원과 요양원에서 간병을 도맡는 중국 동포들, 차별과 혐오 속에 정확한 통계도 없는 2세대 이주민, “역대 최악의 이주민 산업재해”인 화성 아리셀 참사 피해자 등에 씌워진 덫을 들춘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의 ‘외국인 건강보험 왜곡’ 발언(“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인종주의적 선거전략”으로 꼽았다.
‘저개발국 출신 이주민들이 내 생계를 뺏는다’는 분노도 인종기획이 만들어낸 착각이자 오해다. 고용허가제가 그들에게 허용하는 일자리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더럽고 위험한 직종들뿐이다. 한국인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차별받고 혐오 받는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들이 좋아하고 선망하는 고소득 외국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밥상, 옷, 집, 가전제품, 출산·간병·돌봄과 생명을 죽이는 일(살처분)까지 이제 한국인의 일상은 바다에 빠져 죽고, 목매달아 죽고, 어느날 돌연 증발하거나, 가정에서 쫓겨나며 ‘인종화된 이주민들’ 없인 하루도 유지되지 못한다. 이 진실을 외면하는 한 한국인이 되려고 발버둥치다 목숨을 잃은 태완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다문화의 확산이 아니라 구조의 개혁”을 촉구한다. “단기순환 인력정책을 폐기하고 영주의 기회를 제공하는 실질적인 이민정책”이 이주민만을 위한 ‘전환’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에겐 “예측 가능한 인력 수급과 교육 훈련을 가능”하게 하고 국가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개혁할 시간을 벌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글·사진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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