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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12시간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유족 법정싸움 2년 만에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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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즈엉반응웬(32)이 생전 공사 현장에서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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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남편이 일 때문에 죽었으니까. 억울하지 않게, 저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판결, 그거를 해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남편 즈엉반응웬(32)을 잃은 원고 김윤정(35)씨의 바람이 법원에 닿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이주영)는 19일 김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돌연사한 즈엉이 숨진지 2년만에 타향인 한국에서 ‘일하다 숨졌다’는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즈엉은 지난 2022년 11월18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철근을 나르다 급성 심장사로 사망했다. 사실혼 관계의 아내 김씨와의 사이에 딸이 태어난 지 11개월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한해 3126명의 이주노동자가 그렇듯이 즈엉의 죽음 역시 기록되지 않을 뻔 했다. 즈엉 사망 이후 원청인 디엘이앤씨(DL E&C)는 “하청 소속이라서 우리 회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업무 시간과 업무 강도와 관련해서도 즈엉의 유족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주장이 이어졌다. 근로복지공단은 회사쪽 자료만 확인한 뒤 산재 신청 기각 결정을 내렸다.



즈엉보다 한국 생활이 길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아내 김씨는 남편의 죽음이 묻히지 않도록 1년 내내 ‘회사와 다른 증언’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활동가와 법률가를 만났다. 1년3개월만에 즈엉의 죽음은 법원으로 올 수 있었다. 지난 10월31일 결심공판에는 즈엉의 동료인 베트남인 한(일명 한 팀장)은 직접 증인석에 서서 즈엉의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 강도를 직접 증언하기도 했다.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이날 선고 이후 “늦은 밤까지 현장을 다니며 즈엉의 죽음을 증언해줄 수 있는 동료를 찾아다니고 밝힌 결과가 이렇게 산재 인정으로 마무리되어서 보람을 느낀다”며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아서, 세 살 난 즈엉의 아이도 이 판결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즈엉처럼 죽음이 드러나고, 재판에서 산재를 인정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 2022년 기준 사망사실이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3340명) 중 기초적 신원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죽음은 6.4%(214명)에 그친다. 이 중 질병사로 인정받은 이주노동자는 17명뿐이다. 원 대표는 “다른 노동자들 역시 각종 사고 상황에 놓였을 때 산업재해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즈엉 사례처럼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현장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이 더욱 명확히 밝혀지고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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