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판례 변경…재직 조건 있어도 통상임금 인정
"근거없는 '고정성' 기준, 통상임금 부당 축소"
기업 추가부담 예상…판결 선고일 이후부터 적용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한화생명(088350)보험과 현대차(005380) 근로자들이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고정성’ 요건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제외하고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재정립한다”고 밝혔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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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정성’ 기준을 폐기했나
대법원은 그동안 통상임금 판단의 핵심 기준이었던 ‘고정성’ 요건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을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한 임금”이라고만 정의하고 있을 뿐, ‘고정성’을 요건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킨다”며 “당사자가 재직조건 등과 같은 지급조건을 부가하여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이 잠탈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판단 기준은 ‘소정근로 대가성’
대법원이 새롭게 제시한 기준은 ‘소정근로 대가성’이다.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이라면, 여기에 어떤 조건이 붙어있더라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직자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재직하는 것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라며 재직 조건만으로는 통상임금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상여금의 경우에도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소정근로일수 이내의 근무일수 조건”이라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다만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일수를 조건으로 한 임금은 추가 근로의 대가로 보아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
성과급은 여전히 통상임금 아냐
주목할 점은 근무실적에 따른 성과급은 여전히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일정한 업무성과나 평가결과를 충족해야만 지급되므로 ‘고정성’ 기준을 폐기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소정근로 대가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근무실적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최소 지급분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이번 판결의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체 기업의 26.7%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으며,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간 6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정기상여금 비중이 높고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들에게 임금 증가 혜택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이 같은 파급효과를 고려해 새로운 기준의 적용 시점을 제한했다. 원칙적으로 이번 판결 선고일 이후부터 적용되며, 예외적으로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동종 사건들에만 소급 적용된다. 대법원은 “임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임금 지급에 관한 수많은 집단적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종전 판례 법리에 대한 신뢰보호가 필요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한화생명 사건에서는 근로자들의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본 원심 판단이 옳다고 인정한 것이다. 반면 현대차 사건은 회사가 승소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기준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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