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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우보세]탄핵도 "빨리빨리"…빛 발한 냄비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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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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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가운데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 일대에서 시민들 및 정당, 시민단체가 윤 대통령 탄핵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 탄핵안은 오후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00명 중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사진=머니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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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는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도 익숙하다. 'K-근성'을 한 마디로 축약해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밤의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가결까지 불과 12일 만에 한국 정치가 빛의 속도로 격변을 겪고 그 혼란을 수습해가는 모습에 외국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그 자체로 한편의 K-드라마 같다는 평가다.

블룸버그통신은 20만 국민이 여의도에 일사불란하게 모여 질서정연하게 시위하고, 탄핵 국회 가결로 중간 매듭을 지은 데 대해 찬사를 보내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기저에 깔려있다고 짚었다. 한때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냄비근성으로 폄훼됐던 이 같은 특징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갈등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한국만의 강력한 에너지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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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전격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경내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붙잡아 막아서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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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가난했던 한국이 짧은 시간 글로벌 공급망의 정상에 오르고 정치경제 및 대중문화에서 체급 이상의 펀치를 날릴 수 있었던 데는 현안에 빠르게 집중하는 삶의 방식이 유효했다.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시민들은 지체 없이 단결해 반발했다. 100년 저항의 역사를 가진 국민이 다 함께 냄비처럼 흥분해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했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 대통령은 낙제점, 국민은 A+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험난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불과 며칠 새 한국 주식시장에서 수십억달러가 증발했다. 원화는 달러 대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경제 안정화를 다짐했으나, 한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변동성에 노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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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의 한 환전소에 환율 정보가 나타나있다. 원달러 환율이 뛰면서 우리나라 수입 제품의 전반적 가격 수준(원화 환산 기준)이 1.1% 올랐다. 수입물가지수는 지난 10월(2.1%)에 이어 두 달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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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에 앞서 각국 정상은 물론 재계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의 마러라고 자택에 줄을 대고 있다. 예측불허의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동맹의 대가로 주판알을 튕긴다. 관세전쟁을 예고한 트럼프의 취임은 내정 혼란으로 준비가 부족한 한국으로선 큰 도전이다. 정상들 간 만남이 중요한 외교에서 한덕수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대전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정세도 엄중하다. 북-러 동맹으로 북한의 핵 위협은 더 높아졌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윤석열 대통령의 '땡깡'(temper tantrum)은 평양이 받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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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표지 사진이 보인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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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한국의 계엄 선포 이후 방한을 취소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1월 방한 계획을 보류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북특사에 자신의 측근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대사를 지명했다.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빨리빨리는 제 몫을 다했다. 이제는 한 대행을 중심으로 외교 헛발질을 최소화하고 상황을 잘 관리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진짜 시험은 민주 제도가 꺾여도 그날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다. 한국의 기관들은 견뎌내고 있다"고 밝혔다. 탄핵 정국에도 한국이 정상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이번 드라마 시즌1의 끝이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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