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효 시인 |
공명(功名)도 잊었노라
김광욱(1580∼1656)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煩憂)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병와가곡집
벼슬살이의 어려움
조선 선조 인조 때 좌참찬을 지낸 김광욱(金光煜)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밤마을에 은둔하며 지은 노래다. 김광욱은 고향에서 율리유곡(栗里遺曲)이란 제목으로 시조 14수를 지었다. 부귀와 공명을 떠나 세상의 번거롭고 근심스러운 일들을 온통 잊고 지내는 중에 자기의 몸마저 잊어버렸다는 점층법(漸層法)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도연명 죽은 후에 또 연명 났단 말이/밤마을 옛 이름이 맞추어 같을 시고/돌아와 수졸전원(守拙田園)이야 긔오 내오 다르랴
이 시조로 보아 그는 진(晉) 나라 때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벼슬을 떠난 도연명처럼 되고자 염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벼슬살이는 양날을 지닌 칼이다. 그 칼은 상대를 공격하지만,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어렵고 위험한 벼슬살이를 동경하고 벼슬아치가 되고자 몰려드는 사람들은 마치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비와도 같다. 한번 뛰어들면 몸을 빼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선인들은 벼슬길의 위험함을 경고했으며, 그런 위험을 떠나 은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연 어떤 것이 잘사는 길일 것인가?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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