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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환율 1400원대 ‘뉴노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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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악재 덮친 외환 시장


우리 주력 산업이 중국 공세에 허덕이는 가운데 정치·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확산 일로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한때 원·달러 환율은 1440원을 돌파하는 등 변동성이 큰 폭 확대됐다. 트럼프 우려에 ‘계엄 쇼크’까지 덮친 우리 외환 시장에선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환율 변동성에 전방위적으로 노출된 산업계는 연말 사업계획 수립에 비상이 걸렸다.

매경이코노미

환율 변동성 확산 일로

외국계 IB, 일제히 원화 ‘매도’

서울 외환 시장에서 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등락 중이다. 12월 초 140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계엄 선포 이후 야간 거래에서 1446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원·달러 환율 상승폭은 다소 꺾였지만 여전히 연중 최고 수준이다.

환율 변동성을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을 지목한다.

최근 환율 단기 변동성 확대 요인은 정치적 불안정성 확대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로 내년 5월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달러 ‘롱(매수)’·원화 ‘쇼트(매도)’ 전략을 권했다. 노무라증권은 원화 약세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등 대외 환경 변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대응 여력 부족 ▲1400원대 환율에 대한 정책당국 관점 변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헤지 유인 감소 ▲포트폴리오 유입 약화와 개인 자산 해외 유출 위험 ▲한국의 약화된 거시경제 펀더멘털 ▲정치적 불확실성 증가 등을 꼽았다.

둘째,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 부진에 따른 원화 자산 매력도 저하다. 정치적 불안정성은 단기 요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며 원화 약세 뿌리에는 주력 산업 근원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시선이 깔려 있단 것이다. 우리 수출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은 반도체와 자동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와 자동차가 지난 2분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겨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들 주력 산업을 향한 외국인 투자자 시선이 싸늘하다는 데 있다.

산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의 전방위 공세를 우려하는 시선이 팽배하다. 중국 기업 침공은 이미 손익분기점(Bep)이 무너진 석유화학 산업뿐 아니라, 반도체 산업으로도 확산 중이다. 산업계 일각에선 ‘레거시(범용)’ 반도체 산업을 두고 벌써부터 ‘제2석유화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반도체 수출 통제 개정안에서 중국을 비롯 ‘무기 금수국’에 내년부터 HBM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는데, 눈에 띄는 대목은 중국 최대 D램 제조업체 창신메모리(CXMT)를 제재 대상에서 뺀 것이다. 미국이 창신메모리를 제재 리스트에서 뺀 것은 세계 반도체 1·2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견제해 장기적으로 반도체 패권 구도를 다극화하겠단 포석이 깔린 것으로 산업계는 해석한다. 지금까지 우리 반도체 기업은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만들어낸 현금흐름으로 선단 공정과 기술에 집중 투자해 초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을 폈다.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 기업 지배력이 커질수록 범용 시장을 지렛대 삼아 미래 기술에 투자해온 우리 반도체 기업 성장 공식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 리스크’가 짓누른다. 완성차·부품업계에서 꼽은 트럼프 행정부 최대 리스크는 관세 부과와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 등 두 가지다. 관세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차·기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iM증권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 보편 관세 10~20%를 부과하고 이를 생산자가 전부 부담한다면, 현대차는 월 2000억~4000억원, 기아는 월 1000억~2000억원가량 부담을 떠안는다.

이런 우려 속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겹치자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제히 원화 ‘쇼트(매도)’ 포지션을 취했다는 게 외환 시장과 금융투자업계 시각이다.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사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달러 방향성만 고민하지 원화 같은 이종통화 방향성에는 관심이 없다. 달러화 대비 원화 등 이종통화 약세로 환 변동성이 10% 이상 확대될 경우 투자 국가 화폐에 노출된 자산 기대수익률이 급감한다. 이 경우 글로벌 연기금 등에서는 한국물 주식·채권 등 비중을 기계적으로 줄이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트럼프는 세수 부족을 조세 저항이 우려되는 증세보단 사실상 관세로 정면 돌파하겠단 의지를 내비친다. 심지어 트럼프 당선인은 재정·조세 정책으로 법인세·소득세 감세를 추진한다. 정부가 세금을 감면하면서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를 더 찍는 수밖에 없다. 시장에 국채 공급이 늘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미국 금리 상승은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져 강달러를 부추길 수 있다.

환율 상단 1450원 열어둬야

일각선 1500원 우려도

사정이 이렇자 시장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뉴노멀’로 자리 잡고 일시적으로 1500원까지 오를 가능성을 우려한다. 환율이 마지막으로 1500원대(종가 기준)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0일이다. 단기적으로는 환율 상단을 1450원 이상으로 열어둔 분위기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화 가치가 급락했는데 다른 나라 통화 가치 변화를 비교해보면 원화 고유 리스크가 확대된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1450원까지 환율 상단을 열어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금융당국의 환율 방어 여력을 우려하는 시선도 조금씩 늘고 있다. 환율 방어에 쓰이는 한국은행 외환보유고는 하락세를 거듭해 최근 4000억달러 선에 근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4153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4156억8964만달러)보다 약 3억달러 줄었다.

산업계와 금융권은 환율 변동성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1450원 안팎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금융권에선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증가한다. 이는 금융그룹 전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도체와 2차전지업계는 환율 변동성 확대로 내년 순이익 영향을 심도 깊게 분석 중이다. 최근 수년간 이들 업종에서는 공장 증설 등으로 미국 현지 투자가 크게 늘었다. 현지 자금 조달 과정에서 달러부채 증가로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일시적으로 커질 수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최근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경제 분야만큼은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9호 (2024.12.18~2024.1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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