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영향력 넓혀가는 민주노총
국내 IT업계에 ‘노조 바람’이 불어닥쳤다. 올해 11월 네이버 본사 노조 가입률이 50% 선을 넘겼다. 한 달 전인 지난 10월 카카오 노조가 직원 과반을 돌파한 데 이어 네이버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빅테크에서 모두 ‘과반 노조’가 탄생했다. 네카오뿐 아니다.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을 비롯한 여러 게임사, 여기에 야놀자·우아한형제들(배민) 신진 IT 기업에도 올 들어 노조가 들어섰다.
IT업계 노조 열풍 중심에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 자리한다. 줄여서 ‘화섬식품노조’ 또는 ‘화섬노조’라고도 부른다. 민주노총 아래 산업별 노조로, 최근 판교와 강남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화섬노조 IT위원회 지회가 늘어나고 있다.
노조 활동은 법으로 보장된 당연한 근로자 권리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 없던 노조가 생겨나는 건 경영상 리스크임에 분명하다. IT 노조를 주도하는 곳이 제조업 기반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민주노총 화섬노조’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 양대 빅테크 기업 노조 가입률이 50%를 넘어섰다. 모두 민주노총 산하 화섬식품노조 지회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경기 성남 카카오 아지트에서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언’이 인적·경영쇄신 참여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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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카오, 민주노총 과반 노조
전체 근로자 대신해 단체교섭…영향력↑
화섬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노조 이름)’에 따르면 네이버 본사 노조 가입률이 올해 11월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노조 가입률이 과반을 돌파한 네이버 그룹사는 이제 총 6곳이 됐다. 네이버 본사를 포함해 엔테크서비스·네이버웹툰·네이버제트·스노우·스튜디오리코 등이다.
네이버 노조 가입률이 50%를 넘어선 건 2018년 4월 첫 노조 설립 이후 6년 7개월 만이다. 40%대 언저리였던 가입률이 최근 들어 크게 올랐다는 게 네이버 직원들 설명이다. 네이버가 최대 실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직원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불거지면서 가입률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화섬노조 카카오지회인 ‘크루유니언’ 역시 올해 10월 사측에 가입률 과반 달성을 공표했다. 아직 사측으로부터 과반 여부를 확인받지는 못했지만 과반 노조가 확실시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활성화된 ‘재택근무’ 제도가 사라지면서 카카오 노조 가입률이 올랐다는 해석이다. 카카오는 올해 초 정신아 대표 취임 이후 ‘전원 출근제’를 시행했지만 노조 반발에 부딪히며 갈등을 겪어왔다. 최근 열린 카카오 단체 협상에선 ‘주 1회 원격 근무 도입’에 최종 합의했다.
‘가입률 50%’는 노사 관계 분기점으로 불린다. 과반 검증을 마친 노조는 노사협의체 내 근로자 위원을 위촉할 권한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과반 노조 인정 시 회사 전체 근로자를 대신해 사측과 단체교섭에 나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취업 규칙·고용 조정·근로 조건 변경 등 주요 경영 사안을 둘러싸고 해당 노조 영향력이 확대된다. 경영상 구조조정에서도 과반 노조와 사전 협의가 필수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IT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근무 시간이나 임금 수준, 노사 관계에 대한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며 “과도한 근무 시간이 일상이 된 IT업계에 노조가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IT업계는 왜 ‘화섬노조’를 택했나
2018년 네이버 시작으로 줄줄이 합류
IT 노조 열풍 중심에 ‘화섬노조’가 자리한다. IT업계 노조 대부분은 화섬노조 IT위원회 지회 형태로 출범했다. 2018년 IT업계 최초 노조로 평가받는 네이버지회가 화섬노조를 상급단체로 삼으면서, 이후 후발 IT 기업 노조 모두 화섬노조에 적을 두는 추세다.
‘왜 하필 화섬노조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다. 데이터 전송에 ‘광섬유’가 필수라는 점에서 ‘섬유’ 노조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지만, 사실 확인은 안 됐다. IT가 비교적 새로 생긴 산업군이다 보니 기존 산업별 노조가 없었는데,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SPC그룹 파리바게뜨지회가 화섬노조에 합류하며 성과를 내자 네이버도 뒤를 따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네이버가 노조 설립 석 달 만에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등 성과를 내자 이후 IT 기업 화섬노조 지회 출범이 잇따랐다. 2018년 9월 넥슨 노조가 ‘스타팅포인트’로 출범한 데 이어 9월에는 스마일게이트 ‘SG길드’, 10월에는 카카오가 ‘크루유니언’이라는 이름으로 노조 설립을 알렸다. 강성 노조 이미지를 벗기 위한 특유의 ‘신선한 작명’이 IT업계 노조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21년에는 한글과컴퓨터 ‘행동주의’와 웹젠 ‘위드’, 2023년에는 엔씨소프트 ‘우주정복’과 NHN ‘넥스트휴먼’이 출범했다.
노조 설립은 올해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월 야놀자·인터파크트리플 ‘와이유니온’을, 5월에는 넷마블 노조가 탄생했다. 가장 최근인 11월에는 우아한형제들 창사 첫 노조 ‘우아한유니온’ 출범이 알려졌다.
IT 노조 확산에 우려하는 경영계
가뜩이나 어려운데…‘귀족 노조’ 생길라
IT업계 노조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IT 기업은 특성상 빠른 의사 결정과 유연한 조직 개편이 중요할 때가 많다. 경영 활동에 노조가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기업 경쟁력이 후퇴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뚜렷한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플랫폼과 게임업계에선 더욱 리스크가 크다. 팬데믹 성장기에 높은 임금을 주고 데려온 대규모 개발자 인력은, 업계 전반에 삭풍이 불어온 현시점 비용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평균 인건비가 올라간 상황에서 실적 부진에 직면한 IT 기업은, 노조와 임금 교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권고사직과 구조조정이 업계 화두가 된 가운데, 마침 노조 입김이 강해진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노조 활동이 활발한 IT 대기업과 노조가 없는 스타트업 간 처우 차이가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노조가 있는 기업 근로자는 현실에 안주해 이직을 꺼리고 스타트업 개발자 사이에선 대기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쏠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혁신과 역동성이 중요한 IT업계에는 악재”라고 말했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IT업계에도 앞으로 귀족 노조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현재 노조 구성원 다수가 3040인데, 그들이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노동 경직성이 커지고 잇속 챙기기에만 함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지금같이 국내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강성 노조 개입이 커질 경우, 한국을 넘어 글로벌 투자 유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9호 (2024.12.18~2024.1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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