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4일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 포크로우스크에서 다리가 파괴된 모습이 보인다. 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 전사를 처음으로 확인한 지 하루 만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혀, 북한군 파병 실태와 전쟁의 격화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미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17일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에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의 교전으로 북한군 수백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군 사상자 규모 수백명이 우리의 최신 추산”이라고 말했다. 사상자 규모는 “가벼운 부상부터 전사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며 “모든 계급”의 북한군이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또 “북한군은 전투 경험이 없다”며, 전투로 단련된 우크라이나군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백악관과 국방부, 국무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북한군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지난 며칠간 우리는 북한 군인들이 전장의 제2선에서 전선으로 이동하고 전투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목격해왔다”며 “수십명”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도 “러시아 내 전장에서 전사한 북한 군인을 봤다”고 말했다.
이번 미군 고위 관계자 발언은 하루 사이에 북한군 사상자 규모를 수십명에서 수백명으로 늘려 잡은 것으로, 북한군이 전면에 나서 우크라이나군과 치열하게 교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 쪽은 그동안 북한군의 전투 참여에 대해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여왔다.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11월13일 “1만명 이상의 북한 병사들이 동부 러시아로 보내져” 그들 대부분이 쿠르스크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 작전에 관여하기 시작”했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사브리나 싱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달 25일 북한군 전사나 우크라이나 영토 쪽 전선 파병을 부인하면서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군이 “교전할 준비가 됐다”고만 했다. 북한군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확인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은 지난 9일까지 유지됐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쪽에서 나온 북한군 파병과 전투 참여를 전하는 각종 영상과 사진 등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 쪽은 아직까지는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크렘린궁은 북한군 파병에 대한 서방 언론들의 질의에 국방부에 물어보라고 미루고 있다. 북한군 파병을 부인도 시인도 않는 전략적 카드로 여전히 쥐고 있겠다는 자세로 풀이된다. 러시아 쪽 입장 변화는 지난 13일 친정부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황을 전해온 군사블로거들이 북한군 전투 참여를 전하면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한군이 쿠르스크 플료호보 마을 등을 습격해 우크라이나군 300명 이상을 사살하고 점령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이런 보도가 러시아가 북한군 파병과 전투를 인정하는 첫 걸음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앞서 4일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동맹을 복원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발효시켜, 북한군 파병에 대한 양국 사이의 법적 근거가 확보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쪽은 북한군 전투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면서도 러시아 영내에 한정하라는 금지선을 긋고 있다.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독립 주권국(우크라이나)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수행하려 군대를 보낸다면 북한 정부의 확전이 될 것”이라며 쿠르스크에 있는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싸우도록 보내는 것은 더 큰 확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가 지난 8월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고 격전지로 부상했다. 우크라이나는 점령한 쿠르스크가 종전 협상에서 지렛대가 될 것이라 밝히며 정예 병력을 투입했으나, 러시아는 이들 정예 병력을 소진시키는 소모전을 벌이며 점령지를 절반 이상 탈환해왔다. 동시에 동·남부 전선에서도 진공을 가속화해왔다. 쿠르스크 전황이나 북한군 파병 여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추진하는 종전 협상에서 중대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여, 양쪽은 이를 둔 전략적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