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후 저가상품 가격상승률 16.4%…고가 3배 수준
수입 원자재가격 상승·저가상품 수요전환 등 공급·수요 원인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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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우리나라에도 ‘칩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 물가동향팀은 18일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불평등’ 보고서를 통해 2020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분위 저가상품의 가격 상승률은 16.4% 오른 반면, 4분위 고가상품 가격 상승률은 5.6%로 나타났다.
‘칩플레이션(Cheapflation)’은 저가 제품의 가격이 고가 제품보다 크게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저가·고가 상품 간 상승률 격차가 팬데믹 이전에는 미미했으나 인플레이션 급등기에 크게 확대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월대비)은 2013년 이후 저물가 기조를 보이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빠르게 올랐다. 2022년 7월에는 6.3%까지 상승했다. 한은은 0.50%까지 낮아졌던 기준금리를 2021년 8월에 0.25%포인트(p)를 시작으로 긴축에 돌입했다. 올해 10월 ‘피벗(정책 전환)’을 결정하기까지 3년 2개월간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이번 연구대상인 가공식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정점은 작년 2월 10% 수준이었다. 당시 1분위와 4분위의 물가 격차는 약 6%p까지 확대됐다.
연구팀은 칩플레이션 현상을 진단하고자 대한상공회의소의 스캐너 데이터(3000여 개 조사대상 판매점 주별·상품별 판매기록 저장)를 활용했다. 분석 대상은 팬데믹 이후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인 가공식품으로 한정했다. 그리고 같은 군에서 저가상품의 가격상승률과 고가상품의 가격상승률을 비교했다. 연구 결과 저가상품의 가격상승률이 고가상품 가격상승률의 세 배 수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팀은 칩플레이션이 가계 소득계층 간 실효물가(실제 체감하는 물가)의 격차를 벌려 ‘인플레이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짚었다. 2019년 4분기부터 작년 3분기까지 하위 20% 저소득층 실효물가의 누적 상승률은 13.0%로, 상위 20% 고소득층 11.7%보다 1.3%p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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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칩플레이션은 가계 소득계층 간 실효물가의 격차를 벌림으로써 인플레이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며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소비품목 구성이 완전히 동일한 경우라도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을, 고소득층은 고가 상품을 주로 구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 분위별로 상승률이 상이하다면 각 소득계층의 실효물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칩플레이션 원인으로 공급요인인 수입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 수요요인인 저렴한 상품으로 지출 전환 등을 꼽았다.
연구팀은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 병목, 러-우 전쟁 등으로 수입 제조용 원재료의 국내공급물가가 국내생산·출하 원재료에 비해 더 크게 상승했다”며 “저가 상품의 경우 보통 마진이 작아 비용충격에 대한 흡수력이 낮은데 이때 수입 원자재가격이 급등하게 되면 저가 상품의 판매가격에 상당 부분 전가되며, 이것이 칩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고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격이 좀 더 저렴한 상품으로 수요가 전환된 점도 수요 측면에서의 칩플레이션 요인”이라며 “일반적으로 가계는 고인플레이션 시기에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전에 소비하던 상품과 비슷하지만 더 싼 상품을 구매하거나 같은 상품이더라도 더 싸게 판매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소비행태를 보인다”고 부연했다.
연구팀은 고인플레이션 시기 통화정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인플레이션 불평등 개선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조강철 조사국 물가동향팀 차장은 “(통화정책은) ‘무딘칼’이기 때문에 소득 계층 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 정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팬데믹 이후에 공급 충격, 수요 전환이 일어나면서 칩플레이션이란 현상이 발생했다”며 “이것이 저소득층에도 부담하는 쪽으로 작용했고, 긴축적 통화정책이 결과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칩플레이션 현상도 완화해 저소득층에게도 부담이 덜한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기에 칩플레이션이 나타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 더 큰 인플레이션 비용을 감내했던 것으로 평가된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디스인플레이션이 진전되면서 가격 분위별 상승률 격차도 상당폭 축소되었다는 점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의 혜택 또한 취약계층에서 컸기 때문에 앞으로도 물가안정 기조는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향후 인플레이션이 높은 시기에 저소득층의 인플레이션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연구팀은 “수입 원자재가격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할당관세가 칩플레이션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며 “가격이 급등한 품목에 대해 할인지원을 하는 경우에도 동 품목 전반에 걸쳐 할인지원을 하는 것보다는 중·저가 상품에 집중하여 선별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제언했다.
[이투데이/서지희 기자 (jhsseo@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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