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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국민은 대통령을 너무 몰랐고, 대통령은 국민 수준 오판… 우리 속 후진성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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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탄핵소추… 원로 인터뷰]

[3]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조선일보

기독교 윤리에 기반한 사회운동에 평생 매진해온 손봉호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번 비상계엄과 이에 이어지는 대통령 탄핵 소추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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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우리 국민의 수준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비상계엄에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순식간에 벌어졌지만 일상엔 큰 변화나 지장이 없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도 모두 정상 운행되고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떠는 국민은 없었습니다.”

손봉호(86) 서울대 명예교수는 “비상계엄을 통해 탄핵과 특검을 남발하는 야당의 행태를 고발하면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우리가 대통령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또다시 탄핵 심판을 받게 됐다”며 “어떤 나라보다 훌륭한 민주화를 이뤘고 경제와 문화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금, 우리 속에 내재한 어떤 ‘후진성’이 이런 사태를 불렀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北, 성숙한 시민 모습에 놀랐을 것

-대통령 탄핵 소추가 또다른 정치·사회적 혼란을 부를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큰 혼란에 빠질 정도의 일은 더 이상 안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 국민이 상당히 성숙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과 독재, 민주화 등을 겪었지만 ‘우리가 이 정도로 성숙했구나’ 하고 오히려 놀랐습니다. 불행한 사건이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정치 교육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군이 동원된 비상계엄에 북한의 동향을 우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우리 시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모습에 깜짝 놀랐을 거예요. 계엄령을 선포했는데도 법에 따라 해제되고 계엄이 취소되는 것을 보며 국회의 힘이 막강하구나 생각했을 거예요. 시민들이 국회를 지지하니까 딱 끝나버리는 이 상황이 북한에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탄핵 찬반 편가르기로 상대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까지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화를 내는 건 자신의 의식 수준이 낮다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민주시민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야 할 대상은 비도덕적 행위나 법을 어기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계엄령으로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은 매우 심각한 판단 오류입니다. 무지는 보통 사람에게는 죄가 아니지만, 지도자에겐 죄입니다. 대통령으로 큰 결격사유입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우리는 절대 빈곤을 극복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민주화도 이뤘습니다. K팝이라든가 영화라든가 이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겪고 보니 경제·문화·정치 이 세 가지 성취 가운데서 우리가 제대로 못한 게 민주화였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국민 여론조사를 해보면 항상 제일 신임을 못 받는 집단이 국회였습니다. 그게 터진 겁니다. 누가 잘못했느냐, 결국 민주 국가에서 그들을 선거로 뽑아준 유권자 책임입니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어 가는데 왜 극복을 못한 것일까요.

“사회적 성숙의 문제입니다. 좌파도 우파의 잘한 점은 좀 드러내고 또 우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언론도 이념적 해석은 할 수 있겠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법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선 이념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국민 수준은 낮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경제 수준도 준법 정신도 좋아졌고, 권리를 찾는다는 의식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념과 이해관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국민과 국가에 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념을 너무 중시하고 그것에 따라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다 보니 나타난 부작용입니다.”

보수 궤멸은 진보에게도 좋지 않다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멀리 내다봤을 때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걸 택해야 하는데, 그런 건 무시하고 당장 내 눈앞의 이익이 되는 걸 높이 쳐주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거기에 포퓰리즘이 파고듭니다. 이념과 이해관계가 엮여 있습니다. 이걸 극복 못하면 앞으로 건강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모두가 다 이익을 봐야 내가 이익을 보고, 내 이익만 챙기면 결국 손해라는 걸 알아야 되는데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어요. 도둑이 하는 짓이 바로 그거 아닙니까? 도둑이 왜 도둑질을 합니까? 도둑질을 하면 자기한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도둑이 많아지면 결국 자기도 손해 보는 것까지 생각을 못 하거든요. 이념에 매여서 지금 도둑 정치, 범법자의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념에 매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윤 대통령 역시 이념을 강조하면서 야당과 극한 대립을 빚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TV 토론 사회를 맡았을 때 좌우 패널이 나왔는데 ‘서로의 장점을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했더니 잘하더라고요. 지금도 몰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서로 알면서도 이해관계가 너무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걸 넘어서는 대통령이 나와야 정치가 바뀌지 않을까요.”

-보수가 궤멸할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수가 사라지는 것은 진보에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과잉 반응을 해서 보수층을 완전히 적대 세력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 판에 모든 걸 다 얻겠다고 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행사했다가 역풍을 맞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권한과 함께 정당의 영향력도 지금보다 줄여야 합니다. 지금 공천제는 시대에 걸맞지 않습니다. 과거 국민들의 정보 접근 수단이 많지 않고 국민들의 의식 교육 수준이 낮았을 때는 정당이 공천하는 제도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이 많습니다.”

조선일보

기독교 윤리에 기반한 사회운동에 평생 매진해온 손봉호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번 비상계엄과 이에 이어지는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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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요.

“정당들이 불필요할 정도로 똘똘 뭉쳐서 적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공천제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당 대표 명령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생각이 안 들거든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국회에 들어가 다양하게 투표를 할 수 있겠어요. 민주주의로서는 좀 우습지 않습니까. 국민의 대표가 자유롭게 의정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을 뽑은 유권자들은 뭐가 됩니까.”

-극단적 정치 대립은 정치 제도에 원인이 있는 건가요.

“미국과 한국이 지금 그렇지 않습니까? 대통령 중심제의 나라가 특히 심하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제에 반대합니다. 내각 책임제로 가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내각제를 반대한 이유는 너무 자주 정권이 바뀌면 경제발전이나 남북 관계에서 불리하다, 이렇게 생각해서 대통령제를 고집해 왔는데 지금 세계를 보면 미국과 우리나라를 빼면 대통령 중심제를 하는 나라는 대부분 후진적입니다. 프랑스만 해도 완전한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거든요.”

검증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앞으로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은 경계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일 수 있죠. 그러나 나라를 맡기려면 어느 정도 증명이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기본 양심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평소에 그 사람이 얼마나 공익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도 할 줄 아느냐, 그건 어느 정도 좀 테스트를 거친 사람들을 지도자로 뽑아야 됩니다. 이런 제도 개혁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면 다음 대통령은 이념에 좀 덜 치우치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법원은 원칙대로 재판하면 돼

-향후 정국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사법적 판단을 받으면 이 대표가 아무래도 유리하겠죠. 만약 유죄 판결이 나면 어렵지 않겠어요. 그분이 과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대통령이 될 수 있겠나 좀 걱정은 됩니다.”

-사법적 판단이 먼저 나와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면 국민의 판단을 받을 기회를 빼앗아 정의롭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법원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원칙대로 재판을 하면 됩니다. 이번 사태 이전에 법원은 이미 선거법 재판의 6·3·3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재판을 오래 끌면 법원이 야당 편을 든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너무 서둘러도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법원이 원칙을 지킨다면 어느 쪽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저는 우리 국민을 믿습니다. 흔히 한국 음식은 단일한 레시피를 만들 수 없다고들 합니다. 외국의 스테이크니 파스타니 하는 요리와 달리 한국 음식은 하나를 갖고도 정말 많은 조리법이 있고, 계속 바뀝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변화를 통해 발전하는 진취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공익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훌륭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낙관합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1938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신학 석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윤리와 원칙을 강조하고, 기독교에 기반한 사회운동에 오랫동안 매진해 왔다. 특정 정파나 이념을 떠나 우리 사회의 고비마다 올곧은 발언을 하는 ‘시대의 도덕 교사’로도 불렸다. 2022년 자신이 초대 이사장을 지낸 장애인 교육·지원 단체인 밀알복지재단에 13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했다.

[신동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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