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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尹의 도박, 트럼프 취임 후였다면?…FP “진로수정 압박 안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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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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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과거 행적을 고려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진로를 바꾸라는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도박’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일어났다면 어땠을지를 예상하며 내놓은 답이다.

FP는 16일(현지시간) 칼럼니스트 하워드 프렌치가 쓴 ‘트럼프는 한국의 위기에 다르게 대응했을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12ㆍ3 계엄 사태가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2기 동안 발생할 가능성이 큰 국제 위기 상황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느 시점에 누가 미국 대통령직을 맡고 있느냐에 따라 주요 글로벌 위기의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면서다.

FP는 먼저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는 과도기에 국제 정세는 오랫동안 불안했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특히 흥미로운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물러나고 트럼프가 새 대통령에 취임하는 권력 교체기에 한국 계엄 사태가 터진 점을 우선 지적한 것이다.



“백악관 ‘尹 권력 지지 안해’ 전달한 듯”



FP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에 엄청난 위기를 초래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조용히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외교적 대처를 했다고 짚었다. FP는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정치적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하는 등 한국의 민주적 정당성을 지지하는 외교적 메시지를 사용했다”며 “백악관도 윤 대통령이 권력 장악을 계속 추구했을 경우 지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비공개적으로 전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런 계엄 선포에 대해 미 정부는 헌법과 법치를 계속 강조하며 “심각한 오판”(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라고 하는 등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 왔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고위 당국자의 이런 반응 외에도 윤 대통령의 계엄을 통한 권력 강화 계획에 바이든 행정부가 반대한다는 뜻을 물밑으로 발신했을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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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6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국빈 만찬장에서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윤 대통령을 가리키며 좌중의 주의 집중을 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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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 “尹 직무정지에도 한미동맹 여전”



윤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갔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한ㆍ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철통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ㆍ미동맹은 대통령 간 동맹뿐 아니라 정부 간, 그리고 국민 간 동맹”이라며 “한ㆍ미동맹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바이든 대통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말했듯 한ㆍ미동맹은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이며 훌륭한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FP는 “윤 대통령의 도박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였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확실한 것은 트럼프가 내부의 적 ‘딥 스테이트’(Deep Stateㆍ트럼프가 자신에 반대하는 연방정부 관료집단을 비판할 때 쓰는 말)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했고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적을 비난할 때 ‘배신자’, ‘반역자’ 등 용어를 써 가며 처벌을 공언해 왔다는 점”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또 1ㆍ6 의사당 난입사건 피의자들을 격려하는 등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초헌법적ㆍ초법적인 해결책을 쓰고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오랜 동맹 가치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보여 왔다며 “트럼프의 이런 행적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에게 ‘진로 수정’을 압박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신고립주의’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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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실린 ‘트럼프는 한국의 위기에 다르게 대응했을까’라는 제목의 글. 사진 포린폴리시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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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가 이렇게 예상한 또 다른 근거는 ‘신고립주의’ 또는 ‘불간섭주의’로 요약되는 트럼프의 대외 정책이다. FP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가 곤경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은 수십 년간 주로 아프리카ㆍ아시아ㆍ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관련 있었지만 북대서양 전역에서 강력한 극우 운동이 부활한 지금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FP는 “트럼프 2기 미국이 일종의 개인 중심 신(新)권위주의로 흘러가면서 해외 민주주의ㆍ인권 지원 등 전통적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 있다”며 “사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은 비록 환영받지 못하는 방향이겠지만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방식으로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이른바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독재 국가 지도자들과의 친분을 과시해 온 트럼프의 등장으로 전 세계 외교안보 지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평소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해 온 바이든 행정부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에 우려 섞인 반응과 함께 발언수위를 높여가며 ‘정상적 통치’를 압박했지만, 신고립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무대응으로 일관했을 거라는 게 FP의 분석 결과다. 전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한 미국의 이전 행보와는 분명히 달라질 거란 점에서 국제 질서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하워드 프렌치는 뉴욕타임스(NYT) 카리브해ㆍ중미 특파원, 타임스 도쿄ㆍ상하이 지국장 등을 지낸 뒤 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FP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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