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 새출발 발목 잡듯
탄핵 경험 국힘 당대표 퇴출
대통령 선택 또 내몰린 국민
지난 아픔 잣대로 판단 안돼
대통령제 손봐 악순환 끊어야
탄핵 경험 국힘 당대표 퇴출
대통령 선택 또 내몰린 국민
지난 아픔 잣대로 판단 안돼
대통령제 손봐 악순환 끊어야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대표직 사퇴를 발표하고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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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 사람, 이혼한 사람, 재혼할 사람, TV를 틀면 온통 이혼 얘기다. 전직 배우와 아이돌, 아나운서 등 불과 몇 년 전에는 공개하기 꺼렸던 이혼 사유를 다 까발린다. 일반인 부부가 방송에 나와 서로의 폐부를 찌르며 싸우는 모습은 더 기가 막힌다. 웬만한 막장 드라마도 이제 현실을 따라가기 힘들겠구나 싶다.
그런데 이혼 상담을 보면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 나온다. 부부의 폭언·폭행이나 외도, 경제관념 등 갈등의 뿌리를 따지면서다. 아빠에게 맞는 엄마의 괴로워하는 모습, 학교에서 집에 오니 덕지덕지 붙은 빨간 딱지들, 아빠의 외도 현장 등 기억의 단편을 꺼내놓는다. 30년, 40년이 지나서도 어릴 적 상처가 덧나 괴롭혔다. 정작 부모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대, 성인이 된 자식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린다.
폭행이나 심각한 사건·사고, 자연재해 등 끔찍한 경험에 대한 기억은 유령처럼 몸속을 떠나지 않는다. 분노와 불안·수치심 등 그날의 감정은 아무리 억눌러도 반복적으로 되살아난다.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과잉 경계와 부정이 되레 정상적인 삶을 왜곡한다.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고통이다.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연말, 대한민국은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에 짓눌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충격을 국민에게 주었다. 순간 욕설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국회에서 무장 군인이 시민과 대치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만일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냈다면 정말 참상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계엄 트라우마’는 45년의 세월이 흘러도 민주주의를 짓밟은 공포와 불안으로 떠돌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통과로 보수 지지층에는 ‘탄핵 트라우마’가 확산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보수궤멸 과정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다. 불과 8년 전 총선 참패와 탄핵, 분당, 정권 교체의 과정에서 이제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동훈 대표마저 내쫓은 국민의힘은 마치 발버둥 치며 끌려가지 않으려는 ‘오징어 게임’의 줄다리기를 보는 듯하다. 그 끝에는 어떤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윤석열이 싫어서’ 다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싫고, 박근혜도 싫고, 문재인이 싫은 유권자들은 다음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렇게 윤 대통령까지 왔다. 이전 대통령에 대한 ‘과잉 경계와 부정’은 새 지도자를 선택하는 판단 기준을 왜곡한다. 다른 선택을 했다고 믿었는데 정치가 나아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사회 전체가 ‘대통령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를 선택하면서 능력보다 ‘누가 싫어서’ 선택에 내몰린 국민은 참 불행하다. 여도 야도 이를 알기에 상대 우두머리에게 집중적으로 난타를 퍼붓는다. 국민의 ‘대통령 트라우마’를 끌어내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죽자 살자 싸우며 달려들어 한 사람만 때려잡으면 모든 것을 쟁취한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애초 건강한 토론과 대화·협력은 구조적으로 발붙일 자리가 없다.
‘집단 트라우마’는 이념 갈등과 양극화, 정치 불신, 냉소주의를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요인이 된다. 뿌리깊어 쉽게 치유도 어렵다. 소설가 한강의 표현대로 “치유되거나 회복되기보다 포용돼야 하는 것”일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지 못한다. 우선 권력의 견제와 균형,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부터 바꿔야 한다. 지도자만 바꾸고 넘어가면 불행의 악순환을 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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