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독자 생산 자동차·가전제품도 국가등록문화유산
바나나맛우유, 초창기 용기 없다면 관련 자료 완비해야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반투명한 항아리 모양 용기에 초록색 뚜껑.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먹어봤을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다.
지난 11월 빙그레는 이 바나나맛우유의 용기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혀 세간의 화제가 됐다.
흔히 '국가 유산'이라고 하면 숭례문이나 대동여지도처럼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적·유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일 공장에서 생산되는 바나나맛우유가 국가 유산 후보로 거론되자 이를 의아하게 여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나나맛우유 용기도 국가 유산이 될 수 있을까?
◇ 50년간 베스트셀링 제품…'단지' 용기 디자인 주목
1974년에 출시된 바나나맛우유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빙그레의 대표 상품이다. 하루 평균 80만개가 팔리며 누적 판매량은 95억개에 달한다.
이 제품은 바나나가 귀했던 1970년대에 대일유업(현 빙그레)이 바나나 맛 합성착상료를 사용해 개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제품은 출시 직후 큰 인기를 끌었고, 기존에 널리 쓰이던 유리병이나 비닐 팩 대신 폴리스티렌으로 제작한 항아리 모양 용기가 차별화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서 '60~80년대 한국 소비재 디자인'전 |
빙그레는 2016년 이 독창적인 용기 디자인을 상표로 등록했다.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이 디자인은 개발팀이 조선 후기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바나나맛우유는 국내를 넘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끌며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GS25,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의 외국인 결제 1위 품목으로 꼽혔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의 인기에 힘입어 딸기, 커피, 메로나 맛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차례로 내놨지만, 특유의 용기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했다.
◇ 국가 유산에 공산품도 가능…초기 모델·상징성 있어야
빙그레가 국가 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대상은 바나나맛우유라는 상품 자체가 아닌 고유한 용기다.
국가 유산 중 '국가등록문화유산'은 근현대 문화유산 중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과 활용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제작 및 형성으로부터 50년이 지나야 등록 신청이 가능하다.
소유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고 심의를 거친 뒤 관리 책임도 함께 부담한다는 점에서 국보나 보물 같은 지정문화재와는 차이가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금성 냉장고 |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약 970개의 국가등록 유산이 등재돼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구 신촌역 등 역사, 청사, 종교시설 등 건축물과 이육사·윤동주 시인의 친필원고 등 서적, 공예품·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바나나맛우유는 출시한 지 50년이 지나 등재를 위한 시간적 요건은 갖췄지만 보존 가치와 상징성을 포함한 다른 요건들을 충족할 수 있을지는 따져 봐야 한다.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등록 대상은 역사·문화·예술·사회·정치·경제·종교·생활 등 각 분야에서 역사·학술·예술·지역적 중 하나 이상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또 전체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희소해야 하며,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더라도 등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어려운 경우는 등재가 불가하다.
공산품인 바나나맛우유의 용기는 지침 제6조1항이 규정한 '반복 또는 다량 제작·형성된 문화유산'에 따른 '각 분야에서 연구개발이나 외래기술의 수용을 통해 국내에서 자체 생산·제조한 최초의 것으로 상징성이 있는 것'이라는 규정도 충족해야 한다.
경기 여주시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유산 '현대자동차 포니1' |
예컨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첫 양산형 모델 '포니1'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도약을 상징하는 모델로 인정받아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금성전자(현 LG전자)의 초기 냉장고, 텔레비전, 삼성전자의 첫 상용화 반도체 1점씩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례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양산됐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현재는 원형을 보존한 제품을 찾기 어렵고, 각 제품군에서 태동을 알린 최초의 모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결국 관건은 빙그레가 1974년 출시 당시 생산됐거나 상징성 있는 바나나맛우유 용기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린 셈이다. 다만 플라스틱 용기는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처럼 시리얼넘버 등으로 생산 시점을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 검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설령 원형 제품이 있다고 해도 바나나맛우유가 오랜 시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사실 외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원론적으로는 관련 기준을 충족하려면 최초에 제작됐을 때의 용기여야 한다"며 "만약 그런 게 없다면 고유한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시안이나 도면 등 기록적·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가 있는지 빙그레 측에 확인을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아직 등록 추진을 위한 서류 검토 작업 중이라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며 "등재 신청 시기도 미정"이라고 말했다.
binz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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