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체 간 이식 1호 이지원(가운데)씨와 집도의사 이승규 간이식외과 석좌교수(왼쪽), 김경모 주치의가 1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났다. 이씨의 수술 성공 이후 이 교수팀은 생체 간 이식 수술로 7392명의 생명을 살렸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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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체 간 이식 1호 환자인 이지원(30·여·회사원)씨는 생후 9개월 때 간 이식 수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씨가 13일 건강한 모습으로 서울아산병원의 소아 간이식 30주년 심포지엄에 나타났다.
"국내 생체 간 이식 1호 환자로서 부담 되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환우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부작용 없이 잘 자라게 해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이씨는 행사 중간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이씨를 살린 의사는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와 김경모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이다. 이 교수는 수술 집도 의사, 김 교수는 주치의이다. 이씨는 30년 전인 1994년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담도폐쇄증 진단을 받았다. 간에서 담즙이 잘 배출되지 않아 간이 굳어서 기능을 잃어가는 병이다. 복수가 차고 황달이 극심했다.
부모는 카사이 수술이라는 치료를 권유 받았지만 잘못될까 걱정하다 시기를 놓쳤다.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긴 후 김경모 교수가 "생체 간 이식이라는 게 있는데, 동물 실험을 마쳤다. 의향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생후 9개월 아이의 목숨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아버지 이정훈(65)씨는 "무조건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18일 후 부녀가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다.
국내 생체 간 이식 1호 이지원씨. 이씨는 30년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아버지 간을 이식 받았다. 지금까지 부작용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이씨는 1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간 이식 심포지움에 참석해 "건강한 모습을 보고 환우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가 아산병원 뜰에서 중앙일보 취재에 응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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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뇌사자의 간을 많이 이식했지만 산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교수는 "기증자(아이 아버지)의 안전도 중요했기 때문에 사전에 설계도를 수십 번 그리며 철저하게 계획을 짰다. 자신 있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의 간의 15%를 뗐다. 그러나 설계도에 없던 일이 발생했다. 간문맥(위장관·비장 혈액이 간에 가는 혈관)이 매우 좁아진 채 잘 보이지 않았고 옆 혈관(측부혈관)이 커져 있었다. 어떡하나…. 이 교수는 결단을 내렸다. 측부혈관과 간문맥의 벽을 따고 연결해 일종의 고속도로를 만들었다. 이 역시 첫 시도였다. 수술은 18시간 이어졌다.
"혈류 개통합니다."
초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심정지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아기가 이식 받은 간이 붉게 물들었다. 아기 심장에서 나온 피가 무사히 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성공이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아기가 살아났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고 어엿한 회사원이 됐다.
이승규 교수는 "9개월 아기가 한국 간 이식 발전의 이정표가 됐고, 그 이후 생체 간 이식 수술을 받은 7392명에게 새 삶을 선사했다"고 말한다. 이씨 수술 성공 후 이 교수 팀은 변형우엽 간이식을 개발해 세계 표준수술법으로 만들었고, 2명의 간을 1명에게 주는 2대 1 간 이식, 혈액형 부적합 간 이식 등의 새로운 길을 뚫었다.
이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생체 간 이식 1호라는 걸 알게 됐지만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13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두 교수를 만나지 못했으면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며 "30년 동안 부작용 없이 제 2의 삶을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2~3년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앞둔 8세 아이의 부모를 만났다. 부모에게 "약 먹는 것 외 일상생활 하는 데 전혀 지장 없다"고 말해줬다. 이씨는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희망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정훈씨도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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