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안 가결돼도 선거부정 외치는 보수 집회〉
강주안 논설위원 |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에 찾아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대통령 경호처가 수령을 거부했다. 이에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윤 대통령에게 15일 오전 10시에 나와달라고 통보했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한 이후인 지난 7일 담화에서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12일에도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 내놓은 성명에선 이 내용이 사라지고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 들어갔다. 이후 수사기관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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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 쏟아져 나온 여의도와 달리 50대 이상 대다수
보수 언론 비판하며 유튜브 ‘선거 부정’ 영상 내용 전파
계엄 후 다섯 차례 나온 윤 대통령 담화엔 의아한 내용들
법적 책임 회피 않겠다더니 검·경·공수처 소환 요구 거부
반면에 계엄에 병력을 동원했던 군경 지휘관들은 줄줄이 체포·구속되고 있다. 16일에도 곽종근 특수전 사령관이 검찰에 구속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에서 “군 관계자들은 모두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 이후 병력 이동 지시를 따른 것이니만큼, 이들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자신의 명령을 따른 군 장성들의 처벌을 줄이려면 윤 대통령이 수사 기관에 출석해 불법적인 계엄 포고령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윤 대통령이 소환에 불응하면서 불법적 명령에 대한 소명을 군경 지휘관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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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명단의 ‘선거 관련성’
계엄 관련 명령 중 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지휘관조차 내막을 모르는 사안이 많다. 대표적인 게 체포 명단이 작성된 이유다. 지금까지 알려진 14명의 체포 이유를 두고 정치권에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야당 결집의 구심점이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한다”고 주장해왔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권순일 전 대법관은 2020년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에 관여한 인사들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김건희 여사 사과를 요구해왔고 이번엔 계엄 해제에 힘을 보탰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윤 대통령의 선거 부정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을 낳는 인물이 조해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다. 정치권 인사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인물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다. 지난 총선 참패 직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을 때 후임 총리로 거론될 만큼 윤 대통령과의 친분이 주목받았다. 22대 총선에서 큰 역할이 없었다는 중론이다. 그런 양 전 원장이 체포 명단에 오른 건 의외라는 분석이 많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2020년 총선과 관련해 검거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당시 총선에서 양 전 원장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민주당이 압승했던 21대 총선 역시 부정선거라는 윤 대통령의 생각이 개입됐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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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계획 성공했다면 그 이후엔?
윤 대통령 계획대로 계엄군이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았다면 야당 의석이 다수인 현실에서 어떤 후속 조치가 가능할까.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계엄 선포 자체가 비정상이기 때문에 이후 상황까지 제대로 준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윤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했더라도 비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던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에도 ‘다 잡아들이자’는 식의 발언을 종종 했다”며 “검사야 범죄자를 수사하니까 다들 농담으로 넘겼는데 이번에 보면서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 하에서의 체포는 평시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계엄법에 따라 장기간 구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계엄 시절처럼 군사 시설에 오래 구금해서 김 전 대법원장이나 권 전 대법관에게서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려 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의 경우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야당을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러 입법부를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썼을 것 같다고 분석한다. 그는 “윤 대통령이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돌려주겠다’고 한 건 국회를 장악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계엄 선포 직후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와 윤 대통령의 통화 내용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계엄 직후 전화를 걸어와 “미리 말씀 못 드려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를 전후해 윤 대통령은 군과 국정원, 경찰 고위 간부들과 직접 통화하면서 구체적인 작전 지시를 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추 전 원내대표에겐 사과만 했다는 주장은 미스터리다.
계엄은 국회 의결이 있어야 해제가 된다. 여당 의원엔 율사 출신이 많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김기현·나경원 의원 등은 판사 출신이고 권성동 원내대표와 권영세 의원 등 검사 출신도 다수다. 당의 중진인 이들이 계엄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도 관심이다.
윤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16일 사퇴한 한동훈 전 대표는 “우리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극단적 유튜버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한다면 보수에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을 비상계엄 결심으로 이끈 ‘부정선거 음모론’이 무엇일까. 그 내용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지난 14일 오후 보수 집회가 열리는 서울 시청·광화문 일대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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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와 전혀 다른 광화문 집회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왼쪽)엔 MZ 세대가 몰렸다. 이날 서울 시청 앞 탄핵 반대 집회엔 50대 이상이 주를 이뤘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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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엔 경찰 추산 20만 명의 시민이 몰렸다. MZ 세대가 집회를 주도하면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와 로제의 ‘APT’ 같은 노래들이 집회 가요로 자리 잡았다. 아이돌 응원봉이 새로운 시위 도구로 등장해 밤늦도록 축제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같은 시각 광화문에는 보수 단체가 모였다. 경찰 추산 4만 명 정도가 참석했다. 여의도와 달리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간혹 20~30대가 눈에 띄었다. 한 젊은 남성은 반려견 올드 잉글리시 시프도그에 ‘이재명 구속’이라는 종이를 붙인 채 집회에 참석했다.
음악도 확연히 달랐다. 시청 쪽에선 군가 ‘전선을 간다’가 흘러나왔다. 광화문으로 가니 1978년 독일(서독) 그룹 보니 M이 리메이크한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 음악에 맞춘 율동 공연이 진행됐다.
자영업을 하는 69세 여성에게 집회 참석 이유를 물으니 곧바로 “선거 부정”얘기가 나왔다. 그는 “총선 투표에서 민주당에 세 표가 가면 국민의힘에 한 표가 가도록 조작했다”며 “유튜브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니 한때 보수 경제학자로 주목받았던 인사가 부정선거 주장을 설파한다. 그는 지난 총선 사전 투표를 지적하면서 이런 가능성이 나올 확률이 “162억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빼앗긴 의석수가 50석”이라며 “그 가운데 46석은 확실하고 4석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국민의힘은 158석 또는 154석을 얻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어야 했다.
정책이 매번 국회에 막힌 윤 대통령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쳐도 이런 얘기를 듣고 계엄을 선포하는 게 가능할까. 집회는 윤 대통령 수호 분위기로 일관했다. 연단에서 계속 “한동훈 구속”을 부르짖다가 여당이 탄핵안 투표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권성동 배신자” 구호가 나왔다. 탄핵소추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오세훈도 반역자다”를 외쳤다.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엔 “국민의힘 해체하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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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에 책임 미루는 듯한 대통령 담화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에서 계엄 선포의 적법성을 역설했다. “헌법의 틀 내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지시를 받은 군경 관계자의 증언은 불법 의혹을 제기한다. 헌법 77조는 계엄 선포의 조건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제시한다. 지난 3일 밤 우리나라가 이런 상태였다고 볼 수 있을까. 계엄법 2조 6항은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계엄 사유 발생 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이를 지켰는지도 의문이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던 윤 대통령의 담화에선 불법 행위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내용이 발견된다. 윤 대통령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가 봉쇄돼 본회의장에 못 갔다고 해명했다. 봉쇄 책임이 경찰에 돌아간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또 “질서 유지에 필요한 소수의 병력만 투입하고, 실무장은 하지 말고…”라며 “사병이 아닌 부사관 이상 정예 병력만 이동시키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계엄 당시 국회에 진입한 공수부대원들은 소총을 휴대했고 계엄 투입 병력이 1500명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역시 군 책임이 제기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내놓은 담화에선 이번 계엄의 핵심 이유로 주장해온 선거 부정을 포함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거에 불리할까 봐 지난 정부들이 하지 못했던 4대 개혁을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선거 불리를 무릅쓰고 개혁에 매진했다면서 정작 선거 패배는 부정하는 모양새다. 계엄 선포 후 11일 동안 발표한 담화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을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검·경·군·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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