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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AI에 돈 쓰느라 직원들 공짜 마사지·공짜 밥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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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들 허리띠 졸라맨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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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본사 ‘구글 캠퍼스’에 있는 구내 카페의 월요일, 금요일 운영을 올해 중단했다. 또 이용자가 적은 구내식당도 폐쇄했다. 이와 함께 카페·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음식의 종류를 줄이고, 무료 피트니스와 마사지 프로그램도 축소했다. 이에 앞서 올 초 마사지 치료사 24명과 근로계약도 종료했다.

구글은 마을처럼 형성된 본사에서 직원들이 각종 식음료를 공짜로 즐기고, 마사지·미용 서비스를 받는 ‘복지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이런 혜택들을 최근 대폭 줄여가고 있다. 구글뿐 아니다. 메타, 넷플릭스, 아마존 등도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복지 문화(perks culture)’를 축소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 같은 인공지능(AI)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AI 인재 영입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자,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들 복지 혜택을 줄이는 것이다. 복지(perks)와 침체(recession)를 합친 ‘perk-cession’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공짜 간식은 물론 운동 강습과, 파격적인 휴가 제도 등 빅테크들이 내세우던 차별화된 혜택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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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상훈


◇공짜 간식 없애고 휴가도 줄여

지난 10월 실리콘밸리는 메타의 ‘그럽게이트(grubgate)’로 시끄러웠다. 메타는 구내식당이 없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배달 음식 플랫폼 ‘그럽’의 25달러짜리 이용권을 준다. 최근 임직원 24명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집으로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이용권으로 와인잔, 세제, 치약 등을 샀다는 게 드러나면서 메타는 이들을 해고했다. 가디언은 “공짜 음식은 빅테크 임직원의 가장 오래된 혜택 중 하나”라며 “여기에도 감사가 들어가고, 적발 시 해고될 정도로 복지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빅테크들은 직원들에게 고급스러운 편의 시설과 파격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 문화로 유명했다. 공짜 간식과 화려한 구내식당, 게임 룸을 갖추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혜택 문화가 위축되기 시작한 것은 엔데믹(코로나 풍토병화)과 함께 테크 업계의 호황이 끝난 2022년부터다. 그해에 메타는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실리콘밸리 캠퍼스(사옥)에서 매일 제공되는 무료 저녁 시간을 6시에서 6시 30분으로 늦추고, 마지막 통근 셔틀 운행 시간을 오후 6시로 정했다. 공짜 밥 먹고, 공짜 버스 타고 퇴근하는 것은 막겠다는 것이다. 무료 세탁 서비스도 중단했다. 그 뒤로 차량 공유 서비스 보조금 지원, 주차 대행 서비스, 고급 게임 룸도 없앴다.

파격적인 휴가 혜택도 줄었다. 세일즈포스는 직원이 갈 수 있는 목장 휴양지와 매달 제공하던 추가 유급휴가인 ‘웰빙 휴가’를 없앴다. 업계 최고의 육아휴직과 휴가 제도를 운영하던 넷플릭스도 달라졌다. 2015년 자녀를 출산하거나 입양한 남녀 직원에게 1년까지 유급 육아휴직을 주는 정책을 내놨지만 지난 2년 동안 사실상 육아 휴가 기간은 6개월로 줄었다. 휴가를 떠나고 싶을 땐 자유롭게 떠나라고 무제한 연차를 제공하는 제도도 최근 조정에 들어갔다. X(옛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가 인수하면서 무료 간식과 출장 식비 지급이 없어졌고, 직원의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지원 프로그램을 절반으로 줄였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AI가 바꾼 빅테크 복지 문화

빅테크 복지 문화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022년 말부터다. 지난 2년간 빅테크들은 AI에 집중하면서 이 분야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이들의 몸값을 경쟁적으로 높였다. 늘어난 AI 인재들의 인건비 대신 다른 분야의 인력 해고가 늘어났고, 인재 유치 경쟁을 위한 복지 문화도 사라졌다. 미국 테크 업계는 작년에 26만 4000명 이상 직원을 해고했는데, 이는 2022년보다 10만명이 더 많은 수치다.

생성형 AI가 개발자들의 업무 일부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대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NYT에 따르면 예전에는 엔지니어와 개발자들이 회사에 복지 혜택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에 대해 ‘갑(甲)’의 위치에 있었지만 코딩도 할 줄 아는 생성형 AI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AI 인프라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은 빅테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복지·문화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시티그룹에 따르면 올해 아마존,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비 지출은 2090억달러(약 290조원)로 지난해보다 40%가 늘었다. 이 중 80%가 AI 인프라에 쓰인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빅테크 특혜와 혜택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다’며 “빅테크도 다른 업종의 대기업들과 같아지고 있다”고 했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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