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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광장의 역사 기억하는 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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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안동 하회마을 삼신당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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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경북 안동 풍천면의 하회마을 사람들이 강변의 큰 마당에 모여 마을의 재앙을 몰아내기 위해 굿을 벌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춤이며 국가무형유산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그것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그 시절에 사람들은 탈을 쓰고 신명나는 춤을 추며 양반의 패악질을 꾸짖었다. 흥겹게 이어지는 춤사위에서는 비장함이 배어나왔다. 더 좋은 세상을 이루라는 백성의 엄중한 경고였다. 양반들은 백성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살림살이에 신중해야 했다. 모든 사람살이의 바탕은 결국 큰 마당에서 펼쳐진 백성의 외침이었다.

하회마을의 이 위대한 마당 한쪽에서 백성의 정의로운 외침을 지켜준 큰 나무가 있다. ‘삼신당(三神堂) 신목’ ‘삼신당 당산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다. 여기에서 화천 강변 쪽으로 펼쳐진 너른 마당이 하회마을의 민주 광장이다.

삼신은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전통 조상신을 말하는데, 하회마을의 삼신당 신목은 탄생에서부터 성장에 이르는 모든 삶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비의 대상이다. 백성의 소리가 한데 모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삼신당 당산나무 앞에서 시작한다.

하회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이 나무는 하회마을 입향조인 류종혜(柳宗惠)공이 보금자리를 이루며 심은 수호목으로, 놀이마당으로 이어지는 골목 안쪽에 있다. 나무 높이 18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6m의 이 큰 나무 주위로는 나무 보호를 위해 울타리를 쳤고, 사람들은 이 울타리에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소원지(所願紙)’를 빼곡히 꽂아두어 장관을 이루었다.

하나의 마을이 아름다운 전통 마을로 오래 남을 수 있었던 건 백성들의 외침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광장이 있었고, 더불어 광장에서 외친 백성의 외침을 귀 기울여 들었던 지배계층의 화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광장의 역사를 증거하며 서 있는 한 그루의 큰 나무를 더 소중하게 떠올리게 되는 아침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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