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난데없는 계엄 사태에 놀라 생방송으로 국회 앞 상황을 지켜보던 중, <택시운전사>를 볼 때와 비슷한 의아함을 느꼈다. 완전군장에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한 특수부대원들은 군모와 복면 사이로 눈만 나와 있는데도 표정이 드러났다. 주저함과 안타까움, 약간의 슬픔이었다. 앳된 얼굴에 서린 그 표정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군인들 다치면 어떡하지!” 하고 외쳤다. 정확하게 그 반대의 위험을 걱정하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영상에서는 시민과 대치 중인 부대원들에게 “물러서, 물러서!” 하고 지시하는 군인도, 감정이 격앙된 시민을 감싸안고 토닥이는 군인도 볼 수 있었다.
1980년 광주에서의 그 단 한 명의 군인과 2024년 계엄 상황에 투입된 군인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상부의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여된 책임과 권한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비단 군인뿐 아니라 특정 직업과 직함 속에 존재하는 이상 우리 모두는 한 번쯤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평범한 나날 속에선 그저 ‘돈 받고 하는 일’이던 것이 어느 한순간 엄청난 딜레마, 일생일대의 결정 앞으로 나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말단에 있더라도, 상부의 명령이 지극히 위협적이더라도 일단 그 일을 맡고 있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12·3 계엄이 우리에게 남긴 중요한 교훈이다.
그런 한편, 이번에 각별히 주목받은 직업인들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이다. 계엄 해제의 책임을 다하려고 국회 담장을 넘어 의사당으로 달려가던 그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다 깨달았다.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을 믿고 의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들이 나의 정치적 대표자라는 사실을 이처럼 온전히 실감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그동안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국회의원들은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리를 누리는 사람들’로 보였다. 정치혐오에 가까운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계엄의 밤이 되어서야 나는 ‘일하는 사람들’로서의 국회의원을 제대로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이 자리를 ‘누리는’ 것으로 여기는 의원들도 보이기는 한다. 카메라 앞에서도 “나는 정권 뺏기고 싶지 않아”라고 당당히 말하던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그 상징으로 삼아도 좋겠다. 계엄의 밤에 믿음직했던 의원들조차도 어느 순간 누리는 자리로 돌아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군대의 사병들조차 자기 판단과 책임하에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시민들이 지켜볼 것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인지, 누리는 사람인지 판단하면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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