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이후에 드러났듯이 이것은 비상계엄이 아니라 대통령의 쿠데타였으며,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위임받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국가의 법 위에 군림하려 했던 내란이었다. 사실 그동안 윤석열과 검찰이 보여줬던 행태 자체가 사법 쿠데타였는데, 아예 ‘귀찮은’ 법적 절차를 내던지고 국가폭력을 행사하려 했던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에서는 내란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동안 변화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500년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지배했단 사실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한데, 결국 그 하중이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거기에 외세의 압박까지 더해지자 자체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이나 1884년에 벌어진 갑신정변 같은 사건은 그것의 상징일 것이다. 하지만 지배계층의 이런 내란 상황과는 달리 조선 민중은 어딘가로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동학이다. 1880년대 들어서 최시형의 지도 아래 <동경대전>이 간행된 것은 관의 핍박 속에서도 동학의 세가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방증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동학에 입도한 수가 급증한 한 계기로 임오군란이 꼽히기도 한다. 즉 지배자들의 내란에 맞서 조선 민중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배자의 내란에 맞선 조선 민중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자면 윤석열의 내란은 경악할 지경이다. 여기서 일일이 짚을 여유는 없지만, 무엇보다 먼저 ‘완전한 무사고’의 전형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민주주의란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검찰총장을 하다가 대통령 선거에 곧바로 입후보한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헌법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망상까지 더해지자 상식을 가진 사람은 이해가 도저히 불가능한 언행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12월12일 오전에 뱉어낸 가공할 언설을 보라. 거기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내면에 고인 최악의 오염 덩어리를 봤으며, 어쩌면 저 어두운 언어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동학에 민중이 급격하게 찾아오게 한 또 하나의 사건은 교조신원운동이었다. 동학도들은 1892년 10월 충청도 공주를 시작으로 그해 11월 전라도 삼례, 이듬해 2월의 광화문복합상소와 3월의 보은취회를 연달아 열었는데 이를 계기로 입도자가 크게 늘었다. 교조신원운동이란 일차적으로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해서 동학에 대한 당국의 배척과 탄압에서 벗어나자는 ‘데모’인데, 그 데모는 점차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띠기 시작했다. 이 데모를 통해 민중의 지지와 참여가 잇따랐고 동학도들은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것을 바탕으로 드디어 1894년 전라도 고부에 이어 무장 등에서 일어난 무장봉기로 이어졌고 그해 6월 전주화약을 통해 혁명의 1단계를 완수했다.
그런데 동학도들의 교조신원운동이 어떻게 당시 조선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동학사상이 가진 민중성이 가장 큰 몫을 했겠지만 동학도들이 데모에서 보여준 품격 있는 언어와 행동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내놓은 메시지 자체만 봐도 그렇다. 그것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과 광제창생이다. 흔들리는 나라를 도와 백성을 편안케 하고, 폭력이나 폭력 상황을 제거하여 백성을 구해내며, 모든 살아 있는 목숨을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1894년 3월 무장에서 재기포한 농민혁명군들이 부안의 백산에 모여 네 가지 핵심 강령(사대명의)을 발표했는데, 그 첫 번째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어떤 물건(사물)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不殺人不殺物)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언어와 메시지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자와 빈자가 그리고 양반과 평민이 서로를 공경하고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예의를 갖추더라는 기록이, 동학을 비토했던 황현에 의해 남겨지기도 했다.
동학도가 ‘데모’에서 보여준 품격
윤석열은 ‘새로운 시민들의 합창’으로 탄핵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윤석열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망상과 불신, 교만, 권력에 대한 집착 등이 자본주의와 분단 체제 위에서 기생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내란의 시간을 살 것이다. 서둘러, 동시에 지혜롭게 내란의 시간에서 개벽의 시간으로 넘어가야 한다!
황규관 시인 |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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