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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일)

'서울의 밤' 용산에선...한덕수 총리와 장관들이 기억하는 그날의 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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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디브리핑]

[편집자주] '브리핑'(Briefing)이 사전에 정보나 지시 등을 요약해 전달하는 것이라면 '디브리핑'(Debriefing)은 모든 상황이 끝난 뒤 임무 수행 등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한데 모아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구성, 독자 여러분께 일목요연하게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머니투데이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12.13. xconfind@newsis.com /사진=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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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12월3일 밤 10시30분 직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날 담화는 예고에 없던 생중계를 통해 밤 10시23분부터 방송됐다. 대한민국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10월26일 이후 45년 만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계엄령의 선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계엄 선포 사실을 언제 인지했을까. 지난 11일, 13일 국회 본회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 출석한 국무위원의 발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조태열 "70년 쌓아올린 성취 무너뜨릴 수 있어" 최상목 "이건 안 된다" 만류에도 尹 "무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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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2.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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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현 대통령 권한대행)는 지난 3일 저녁 8시40분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시점이다. 계엄선포가 내려지기 약 1시간 40분전이다.

계엄령이 내려지기 전 국무위원들을 모으자고 한 것은 한 총리였다. 한 두 사람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다른 국무위원들과 윤 대통령을 계엄 선포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한 총리의 설명이다.

이후 장관들이 하나 둘 대통령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밤 9시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받아 들어갔을 땐 이미 한 총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조 장관이 자리에 앉자마자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종이에는 '재외공관'이란 단어를 포함해 계엄령 선포 후 외교부 장관이 조치할 사항들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계엄 선포는 지난 70년간 쌓아올린 모든 성취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거듭 재고를 요청했지만 대통령은 이미 확고한 결심이 선 상태로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조 장관은 집무실에 약 10분 정도 머문 뒤 나가달란 요청에 집무실 옆 대접견실로 자리를 옮겼다.

조 장관은 대접견실에서 한 총리와 여러 우려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밤 9시10분~9시40분 즈음 다른 국무위원들도 속속 도착했다. 도착한 국무위원들도 조 장관과 마찬가지로 접견실에서 기다리다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리도 수시로 집무실과 접견실을 오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교적 늦게, 이날 밤 9시50~55분쯤 대통령실에 도착했는데 "(호출) 이유도 모른 채 사복 차림으로 갔다"고 했다. 최 부총리가 도착했을 당시 한 총리와 다른 국무위원이 대접견실에 있었고 최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곧 계엄이 선포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최 부총리는 깜짝 놀라 한 총리에 "왜 반대를 안 하시나"라고 물었고 한 총리는 "많이 반대를 했었다"고 답했다. 이후 최 부총리는 다른 국무위원 한 두 명과 함께 집무실로 이동해 당시에는 집무실에 혼자 있던 윤 대통령을 만났다.

최 부총리는 윤 대통령과 마주한 자리에서 "(비상계엄 선포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심대해 이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이 역시 수용되진 않았다.

최 부총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제가 짧은 시간동안 있었고 (계엄 선포를) 막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말씀드렸다"며 "그 자리를 제가 제일 빨리 뛰쳐나왔고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전화로 회의(거시경제 금융회의)소집을 했다"고 했다.

송미령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최 부총리보다 더 늦게 용산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밤 10시10~15분 즈음 도착한 송 장관은 "전혀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무슨 회의를 하는 건지 옆의 분에게 여쭈었더니 딱 두 글자 들었다. '계엄'.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말도 안 된다, 막아야 된다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자리엔 대통령이 계시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송 장관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윤 대통령이 회의실을 찾아 2~3분 머물렀는데 송 장관이 기억하는 대통령의 말은 첫 마디 뿐이었다. "누군가와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대통령은 다시 자리를 비웠다. 송 장관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서로 '(대통령이) 어딜 가신거냐'고 물었고, 그 사이 다른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틀었다. 대통령의 육성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였다.

조 장관은 대국민 담화 직전의 당시 상황에 대해 "아마 나중에 거의 임박해 오신 몇 분의 장관님들은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없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이 안 되셨을 것"이라고 했다. 조 장관은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러가겠다 일어서자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재고해 달라"고 만류했다. 대통령에게 돌아온 답은 "상황이 다 종료된 그런 급박한 상황이라 더 이상 무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록·속기·개회선언도 없던 국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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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 출석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계엄 사태와 관련해 사과를 요구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24.12.11. xconfind@newsis.com /사진=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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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국무위원들은 계엄령이 선포되는 동안 대통령실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윤 대통령이) 계엄 발표를 하시고 들어오셔서 (집무실에) 들어가셨다. 들어가실 때 저한테 참고하라고 접은 종이를 주셨다. 당시엔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경황이 없어 주머니에 넣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이날 밤 11시5분쯤 대통령실을 출발해 서울청사에 도착했다. 한 총리는 이 곳에 머물면서 TV를 통해 4일 새벽 1시1분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되는 것을 지켜봤다. 한 총리는 4일 새벽 2시10분 서울청사를 출발해 대통령실에 2시30분쯤 도착했다. 이후 윤 대통령에게 국회 의결에 따라 계엄을 해제할 것을 건의했고 이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준비했다.

최 부총리는 밤 11시40분에 긴급 소집된 거시경제 금융회의 참석을 위해 그 전에 용산을 떠났고 이후 새벽 1시 국회방송을 통해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되는 것을 지켜봤다. 최 부총리는 그제서야 윤 대통령에게서 받아 기재부 간부에게 건넸던 한 장짜리 종이가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 종이에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재정 자금 유동성 확보를 잘 하란 지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 부총리가 회의를 마치고 자택에 돌아간 시간은 새벽 2시였다. 해외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을 때 다시 국무회의가 소집됐다는 통보를 문자로 받았다. 최 부총리는 "그 때(대통령실에서) 제가 사의를 표명한 것이고 분명한 생각이 있었고 (제가) 반대했던 계엄 상황이었기에 회의 소집에 응하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저는 회의를 안 가겠다 통보를 했다"고 했다.

국무회의는 4일 오전 4시15분쯤 시작됐으며 4시30분쯤 계엄이 해제됐다. 계엄 해제에 대해선 전원 찬성이었다.

앞서 비상계엄 선포 직전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은 한 총리를 포함해 최 부총리, 조태열 장관, 김용현 전 장관, 이상민 전 장관, 박성재 장관, 김영호 장관, 송미령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총 11명이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등은 계엄선포 직전 열린 회의에 참석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고 했다.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와 달리 계엄 선포 직전 회의에 대해 한 총리는 기록, 속기, 개회 선언, 종료 선언 등이 이뤄지지 않았던데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관련 부서(법령이나 대통령 국무에 관한 문서에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함께 서명) 절차도 없었단 이유로 국무회의의 절차적 흠결 문제를 제기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무회의 성립 요건이 국무위원 과반(현재 11명)이고 계엄 선포 전 이 11명이란 인원 정족수를 맞춰 계엄의 절차적 요건, 헌법상 절차를 맞추기 위해 장관들이 모두 용산 대통령실에 모이기까지 기다린 게 아닌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에 대해 한 총리는 지난 11일 "오히려 대통령께 분명한 하나의 설득과 (계엄선포를) 하시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국무위원들은 모두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한 총리는 "대통령님의 의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또 죄송하게 생각하고 또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최상목 부총리는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태열 장관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아내지 못했다는데 송구스럽단 말씀, 부끄럽고 죄책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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